아베 전 총리가 관방장관에 취임했던 2006년부터 인연을 쌓았다. 그는 그해 4월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당시 “한국에서 당신은 강한 매파로 알려져 있다”고 하자, 아베는 “난 외교·안보 분야에선 현실에 바탕을 둔다. 일본에선 현실적 발언을 하면 매파라 비판한다. 그런 일본 매스컴의 시각이 한국에도 전달된 것 아니냐”고 답했다.
특히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한국 영화와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 혼자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 흠뻑 빠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택 근처인 도쿄 시부야구 혼마치(本町)의 한국 식당 카레아(可禮亜)는 그가 가장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하는 단골이라고 했다.
2기 내각 때는 ‘싸우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에게 “시끄럽다” “자료, 당신이 조작한 것 아니야”라고 몰아세우는 등 스타일이 180도 바뀌었다. 아베 전 총리와 만날 때마다 느낀 건 ‘빠른 정치인’이란 점이다. 걸음이 빨랐다. 거의 뛰어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말도 생각도 행동도 빨랐다. 미국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17일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려고 뉴욕 트럼프타워로 달려갔다. 외국 정상 중 처음이었다.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의 뒷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서툰 한국말로 “박근혜 대통령님으루(대통령님을) 만나서 반갑스무니다(반갑습니다)”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획 돌렸다. 당시 상황을 물었다. 아베 전 총리의 답은 이랬다. “원래 ‘다음에 꼭 식사 같이 하십시다’란 한국어도 말할 참이었어요. 제 발음이 이상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그날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아까 내 한국어가 이상했느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발음이었다’고 하더군요. 하하.”
아베 전 총리와 만날 때 함께 자리하곤 했던 한 인사는 지난 8일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다다미가 아닌 정치 연설 현장에서 최후를 맞은 게 ‘뼛속까지 정치인’인 아베다운 죽음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