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서계 종택
박세당의 아버지 박정은 요직인 이조 참판을 지낸 데다 인조반정 공신이어서 수락산 근처에 많은 땅을 하사받았다. 현재 마들역에서 장암동 일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집안의 이런 풍요로운 배경과 달리 박세당은 편치 않은 삶을 살았다.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부인 남씨가 죽었다. 재혼한 부인 정씨와도 11년 만에 사별했다. 게다가 첫째 아들 태유와 둘째 아들 태보를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또 유년시절에는 병자호란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원주·청풍·안동을 전전했다.
사대·숭명에 빠진 주자학에 반기
청나라 문물 접하고 신학문 일궈
다른 생각 배척하는 노론의 횡포
“유학 어지럽힌다”며 사상 탄압
서경덕·이지함·윤휴도 깎아내려
이 시대 반지성주의 비추는 거울
청나라 문물 접하고 신학문 일궈
다른 생각 배척하는 노론의 횡포
“유학 어지럽힌다”며 사상 탄압
서경덕·이지함·윤휴도 깎아내려
이 시대 반지성주의 비추는 거울
노자에 심취해 도덕경·장자 역주
한국정치 팬덤 현상과 비슷
윤휴 “싫다고 죽일 이유 있나”
조선 후기 오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은 소론의 영수 박세당뿐 아니라 남인의 영수 윤휴(尹鑴·1617~1680)도 이런 식으로 몰아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후 정국 최대의 관심사는 청나라를 치자는 북벌이었는데 이를 두고 윤휴는 송시열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서양이라고 반지성주의 풍토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공리주의자 밀(J S Mill)은 이를 이론적으로 일찍이 잠재웠다. 그는 『자유론』에서 “99명의 의견이 옳아도 1명의 의견을 침묵시킬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한 명의 의견을 수용해야 진리로 영속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이 후에 의회제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그래서 의회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위험한 교조로 무장한 세력들의 단순한 표 대결장이 아니라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용광로여야 한다. 설령 세종과 같은 훌륭한 군주가 등장한다 해도 군주제가 의회제보다 나을 수 없는 근거가 이것이다.
자기 오류 인정한 아인슈타인
이런 태도는 과학자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세계관을 공유한 사람으로, 확률로 이루어지는 보어의 양자물리학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신은 (확률로 이루어지는) 주사위 놀이를 즐기지 않는다”라고 보어를 공격하자 보어는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라고 반박했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틀렸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는데 보어는 논쟁을 통해 자신의 이론이 완벽하게 됐다고 오히려 그에게 고마워했다. 이처럼 자신이 틀렸음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알고, 또 상대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아는 게 지성인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사회문제 해법을 찾는 일은 과학이론을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사회문제 해법을 두고 좌가 옳으냐 우가 옳으냐 하는 이념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사회이론은 과학이론처럼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가 나올 수 없는 구조여서다. 예를 들어 조선의 해법이 좋아도 지금 해법으로 수용할 수 없고, 중국 해법이 옳아도 한국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과학자는 보편적 진리를 찾는 일보다 해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이론 적용에 있어 타이밍이 중요하고, 또 해법 간 균형을 맞추는 게 필수적이다.
권력투쟁의 도구가 된 학문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사회 해법으로 주자학이 옳은지 여부만을 두고 시간을 허비했다. 아니 주자학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생각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송시열과 그를 따르던 무리가 특히 심했다. 그러니 조선의 사상적 토대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주자학이 옳아도 다른 사상의 견제와 도전을 받아야 사상적 경쟁력을 지닌다. 이런 견제와 도전이 생략되면 주자학을 가리켜 온실 속 학문이라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조선의 주자학은 온실 속 학문을 넘어서서 박제화로까지 진행됐다. 철저히 권력투쟁의 도구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한 세기가 지났어도 이런 풍조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진다. 작금의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하고, 다수의 힘으로 상대방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적 행동이 똑같이 되풀이되어서다. 이런 행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자 공동체가 지닌 자연의 결을 깨뜨리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의 잘못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걸까. 수락산을 오르는 길이 오늘 따라 더 힘든 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져서인 듯싶다.
김정탁 노장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