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어필』은 조선 문종부터 왕들의 글씨를 목판·석판으로 찍어 공신들과 종친에게 나눠주던 왕가의 책이다. 한 번에 약 300부 정도를 찍어냈던 것으로 추정한다. 1662년 현종이 처음 펴낸 뒤 왕이 바뀔 때마다 종친부에서 선별한 선왕의 글씨를 담아 모두 세 차례 새로운 판본을 찍었다.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임진왜란 이후 많은 자료가 사라져 1661년부터 왕가 사람들이 왕의 글씨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라며 “태조의 서명은 엄밀하게는 ‘태조의 글씨’로 볼 수 없지만 서명만으로도 열성어필의 격을 높이는 것이고, 숙종이 그 글에 대해 쓴 어필을 굳이 추가한 건 영조의 효심”이라고 설명했다.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은 또 다른 유물 ‘백자동채통형병’은 조선 후기 백자로 만든 원통형 병에 구리 안료를 칠해 술병으로 쓰던 도자기다. 영국인 선교사 스탠리 스미스가 1914년 수집한 것이라는 표식을 밑바닥에 남겨둔 점이 특징이다.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학부 김윤정 교수는 “백자 일색이던 조선이 후기에는 다른 색도 많이 시도했다”며 “산화철, 산화코발트, 산화동(구리) 3가지가 많이 쓰였는데 그중에서 산화동은 색을 잘 내기가 까다로운 안료라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스탠리 스미스는 ‘스탠리 스미스 컬렉션’을 주제로 소더비 경매가 열린 적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한국 도자기를 보는 시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며 “굉장히 아름답거나 고급 그릇은 아니지만, 당시 도자기 제작 현실과 선교사에 의해 해외로 옮겨지는 과정 등을 증명하는 도자사적으로 의미가 큰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국립고궁박물관 임경희 연구관은 “일반 병사의 것이라 잘 보존해둔 게 적고, 독일 수도원에서 신경 써 보존한 덕에 상태도 좋은 편”이라며 “천에 문양까지 찍었던 거로 봐서는 단순 보병의 갑옷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은 겸재 정선의 화첩을 영구 대여 형식으로 기증한 곳이기도 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자원활용부장은 “겸재 정선 화첩은 경매에 내놓으면 수십억 가치일 텐데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이 2005년 왜관 수도원에 영구 대여하는 방식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012년 7월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1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부터 기획됐다. 김계식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기증 680점, 매입 103점, 영구 대여 1점 등 총 784점의 국외문화재를 환수했다”며 “실태 파악, 보존, 복원, 현지 활용 등 여러 일을 하며 10년간 직원들의 비행거리가 629만㎞, 지구를 160바퀴 돈 거리”라고 소개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1913년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2006년 환수해 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어린 덕혜옹주가 일본에 살던 시절 입었던 초록 당의와 붉은 치마(2015년 일본에서 환수)도 함께 전시된다. 한국전쟁 때 사라진 국새와 어보 중 2014년 미국과 공조 수사로 찾아내고 그 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돌려줬던 ‘국새 유서지보’ 등 도장 9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