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화백을 비롯해 요즘 한국미술 작가들이 더욱 바빠졌다.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러브콜이 이어져 세계 도시 곳곳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가 세계를 파고든 데 이어 이제 '미술한류'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박대성 화백 17일 LACMA
조각가 윤희, 독일 루드비히
남춘모, 상하이 파워롱 전시
"전시, 연구, 비평 나란히 가야"
한국문화에 대해 높아진 관심이 미술계에선 단색화 열풍을 넘어서 이젠 수묵화·설치·조각·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미술계에선 "지금이야말로 한국 작가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해외시장을 개척할 적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대 수묵화, 한국미술 알리다
박 화백은 진경산수화 맥을 이으면서도 전통 수묵화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8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 순회전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 때 대거 방한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경주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때부터 상상도 못 하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5일 전화 인터뷰에선 "해외 전시를 할수록 자부심도 커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외국인들이 모두 제 작품을 보고 '새롭다'며 놀라워한다. 작품을 통해 그들이 몰랐던 뿌리가 깊은 한국문화를 알린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윤희는 198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에 정착해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다. 커다란 주형에 뜨거운 금속 용액( 브론즈· 황동 ·알루미늄)을 던지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조각 작품을 비롯해 대형 드로잉과 최근 시작한 캔버스 작업 등 46점을 망라해 보여준다. 그의 개인전은 현재 대구 인당미술관(7월 10일까지)에서도 열리고 있다. 윤희 작가는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내 작업은 어떤 경향이나 추세로 분류할 수 없는 게 특징"이라며 "의도대로 작품의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물질이 동적인 형태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한 작업을 일관되게 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남춘모는 올해 미국 뉴욕, 독일 마인츠의 갤러리 전시에 이어 현재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파워롱미술관은 2019년 중국 최초로 김환기의 대표 '점화' 연작 4점을 비롯해 박서보·정상화·하종현 작품 등 한국 추상미술을 대규모로 소개한 바 있다. 독일 쾰른과 대구를 오가며 작업해온 남춘모는 선(線)이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부조 회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으며, 근년 들어서는 화면 위의 선들이 서로 맞부딪치며 공간감을 자아내는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 한류. 왜 지금인가
지금 해외 전시를 활발히 열고 있는 작가들은 박 화백의 말처럼 "하루아침에" 떠오른 것이 아니다. 이들 작가는 오랜 시간 자기 개성이 뚜렷한 작업에 몰두해왔고, 국내외 전시도 꾸준히 해왔다. 최근 박서보(90), 이건용(80) 등의 거장들이 화이트큐브·페로탕, 페이스 등 글로벌 화랑을 통해 이름을 알린 것도 미술한류에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 들어선 국력, 거세진 '한류 열풍'이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근년 들어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다. 2019년 홍콩 아트바젤에서 윤희 작가의 조각을 선보였을 때 다섯 점이 다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며 "이후 해외에서 소속 작가들에 대한 문의와 전시 제안을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리안갤러리는 지난 5월 홍콩 아트바젤에서 이건용, 남춘모, 김택상(64) 작품 18점을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안 대표는 "해외 판매도 중요하지만, 미술관에서 작가를 미술사적 맥락에서 조명해 소개하는 전시가 특히 값지다"며 "작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선 판매뿐만 아니라 국내 전시와 연구·비평이 동시에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석 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오는 9월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미술한류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우리 작가들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