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전업주부, 철강회사 창업
“공장 안에 가득 쌓아둔 철강재를 봤는데 반질반질 윤이 나더군요. 우직하면서 섬세한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남녀 구분 안 하는 5남매 집에서 자랐는데, 사회는 남자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군 장교였던 남편이 “사업을 할 거면 이혼을 하자”며 가로막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못하면 힘든 성격이라 6개월을 버티다 시작했다고 한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은 8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철강 가공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이 330억원에 이른다. 비영리재단인 덕수복지재단도운영 중이다. 현재 20~30%가량인 수출 비중을 늘리는 게 꿈이다.
“네 살배기 아들 유모차 태우고 장사”
신경옥(59) 세신산업 대표는 한 번의 부도와 두 번의 화재를 이겨낸 인물이다. 주부였던 신 대표는 1991년 생계를 위해 재래시장에 주방용품점 ‘은성상회’를 열었다. 네 살배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장사하러 다니던 그는 외환위기 때 부도를 냈다. 하지만 3년 후 세신산업을 설립하며 주방용품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불이 나서 제품과 장비가 다 타고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안 밀렸습니다. 재기 비결도 약속을 생명 같이 지킨 것입니다. 그렇게 신용이 쌓이니까 옆에서 도와주더군요.” 그는 “한 번 실패한다고 해서 포기하면 그렇게 끝난다. 그 실패의 원인을 찾아서 다시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01년 남편이 하던 사업을 맡은 지 20년 만에 회사 매출을 18배 가까이 키운 경영인도 있다. 각종 케미칼 제품과 친환경 제설제를 제조하는 업체인 해천케미칼을 이끄는 변화순(55) 대표 얘기다.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였던 변 대표는 건강이 악화되던 남편이, 자신이 하던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한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2001년 10억원 규모였던 회사 매출은 최근엔 185억원으로 커졌다. 변 대표는 이렇게 회사를 키운 비결에 대해 “거래처에 진실하게 대한 게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적이고 남자 비중이 높은 화학 시장에서 처음 비즈니스를 자리 잡는 게 어려웠다”며 “하지만 품질과 시장 경쟁력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비즈니스를 이어 오다 보니 고객의 신뢰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교 때 창업, 첫 달 매출 4만원
어린 나이로 인해 우여곡절도 겪었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때 사업자등록증을 내러 세무서에 갔는데 처음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반려하더라”고 말했다. 세무서를 설득해 겨우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그는 회사를 15년 만에 매출 600억 원대의 회사로 키웠다. 중3 때 용돈 10만원을 투자해 첫 달에 4만원을 벌었던 일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발전이다. 박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사업을 1년만 해보고 그만두지 말고 2년, 3년 버텨야 한다. 창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너무 빨리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62년간 한 우물 … 샤넬도 찾는 ‘벨벳 여왕’
경북의 벨벳 직물 제조업체인 영도벨벳의 류병선(82) 대표는 62년간 한 우물을 판 경우다. 1960년에 창립해 벨벳이라는 직물 단일 아이템으로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시작은 스무 살 때였다. 2남 2녀를 키우던 그는 남편 고 이원화 회장과 공동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수입만 하던 벨벳을 국산화해 보겠다며 연구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벨벳 생산에 성공했다. 국산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는 생산하는 제품의 98%를 해외 12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샤넬이나 구찌도 고객사였다. 벨벳 패션 아이템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여성 경영인은 회사와 가정을 양립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이자 아내라는 걸 잊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스스로에게 당당한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