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1998) 선생의 4남 중 막내아들이다. “어렸을 때 몇 번 아버지께 시를 써서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제목이 ‘고양이 꿈’ ‘시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스무 서너살 무렵 어느날 ‘눈 좋을 때 책 많이 봐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또 1년 뒤쯤 단양 남한강가 돌밭에서 제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가는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삶의 전환점은 새천년과 함께 왔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 격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북한산·인왕산 등 산행길에서 자연을 접하며 얻은 느낌을 활자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2008년 명예퇴직을 한 뒤로는 등산과 글쓰기가 본업이 됐다.
그의 시는 아버지의 시와 비슷한 듯 다르다. 문학평론가 송기한 대전대 교수에 따르면, 박씨의 작품은 우리 시사(詩史)의 자연시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다. 자연과 자아의 절대적 융합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청록파 시인 중 조지훈의 세계와 가깝다. 이런 평에 대해 박씨는 “그런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삶이란 게 의외성도 많고 결국 죽음으로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두려움도 있지요. 하지만 허무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돌멩이·바람·구름 등을 만날 때면 현실의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자연과 통래하며 가을 하늘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글을 안 썼던 게 불효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 3, 4년에 한 권씩 책을 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