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썰다 도망쳤다…대낮 서울 한복판 빌딩 '흔들' 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2022.07.01 19:01

수정 2022.07.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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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9~12층이 5분 이상 흔들린다는 신고 접수가 들어온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빌딩에서 119 대원들이 빌딩 안에 있던 시민을 대피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진난 줄 알았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1일 오전 11시 20분쯤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빌딩. 빌딩 출입을 막는 노란색 출입통제선 주변에서는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슬리퍼만 신고 몸만 빠져나온 일부 입주자 모습에서 건물 흔들림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하나만 챙겨 건물을 나왔다는 직장인 박모(50)씨는 “다른 걸 챙길 여유가 없었는데 이렇게 그대로 집에 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 빌딩 ‘흔들’…1000명 대피

건물 입주자 등이 대피한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주변. 사진 최서인 기자

이날 오전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이 흔들리는 사고가 발생해 건물 입주민 등 최소 1000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구청 등 관계 당국은 옥상 쿨링팬 파손을 주된 사고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25분쯤 르메이에르 빌딩이 흔들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진동을 느낀 50여명이 대피한 상태였다고 한다. 현장을 살핀 소방 측은 “단순 신고가 아닐 수 있다”며 건물 전체에 긴급탈출명령을 내렸다. 도착 14분만인 오전 10시 39분쯤이다. 

 
건물 내 대피 방송이 건물 내에 퍼지면서 1000명(종로소방서 추산)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거동이 불편해 건물에 남았던 80대 여성 등 4명은 소방관과 같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상 쿨링탑 사진(왼쪽)과 쿨링탑 날개가 부러진 모습. 사진 종로구청

서울 종로구 측은 이날 오후 1시 50분쯤 현장 브리핑에서 “건물 옥상에 설치된 냉각타워 구조물(쿨링팬)이 부서지면서 진동이 발생했다고 파악했다”고 밝혔다. “옥상 냉각타워 9기 중 1기의 날개(팬)가 부러진 시기와 진동이 있던 시기가 어느 정도 일치했다”면서다. 종로구청은 냉각타워 1기마다 달린 날개 4개 가운데 1개가 파손되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1m 넘는 날개 한짝이 부서져 균형을 잃고 계속 작동하면서 건물에 흔들림을 줬다”는 것이다.


정병익 종로구 도시관리국장은 “날개 손상은 노후로 인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다른 날개도 교체할 필요가 있는지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쿨링팬 사고 때문?…일대는 혼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 빌딩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흔들림이 발생해 출동한 경찰 및 소방대원들이 원인조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빌딩 주변에서는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당황한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워낙 갑작스러워 가스도 못 잠그고 나왔다”며 걱정하거나 반려동물만 끌어안고 튀어나온 입주민 등이 있었다. 이날 건물 내 가스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한때 차단됐다. 출입이 전면 통제됐던 건물은 2시 12분쯤 통제 조치가 해제됐다.  
 
건물 진동을 직접 느낀 건물 입주자 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건물은 1~5층이 상가(354세대), 6~20층이 오피스텔(529세대)인 주상복합 건물이다. 15층에서 일하는 직장인 A씨는 “흔들림이 5분 있었다고 하는데 20분 이상 상하로 울렁거렸다”고 주장했다. 지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56)씨는 “점심 장사를 하려고 대파·양파를 썰고 낙지를 삶으며 재료 손질 중이었는데, 문도 못 잠그고 난리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날 장사를 망쳤다며 울상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형 빌딩이 흔들리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각종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자주 가는 곳인데 너무 무섭다” “당분간 그 주변엔 안 가려고 한다” 등과 같은 글이 속속 올라왔다.
 
종로구에 따르면 르메이에르 빌딩은 지난 3월 안전점검을 받았다. 건물을 관리하는 안전진단업체가 추가 보완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정 국장은 “구조 안전전문가 4명과 현장점검에 나선 결과 추가 위험징후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