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야당이지만, 국회 의석수만 놓고 보면 칼자루는 박 원내대표가 쥐고 있다. 민주당이 299석 중 과반인 170석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박 원내대표 역시 30일 오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내 1당으로서 국회가 한 달가량 공전 상태에 있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원내대표가 택한 국회 정상화의 첫 카드는 의장단 단독 선출이다. 그는 “고금리·고물가·고유가로 민생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국회가 관련 입법도 하고, 정부 대책을 따져 물어야 할 때”라며 “국회 본회의 직전까지 국민의힘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국회의장단을 선출해 입법부 공백 상태를 막겠다”고 밝혔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이미 (여당에) 주기로 한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장 선출은 하지 않겠다”며 “마지막까지 국민의힘의 전향적인 입장을 촉구하고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회의장만 뽑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 “중간 조정자가 생기는 거다. 국회의장은 무소속이 되기 때문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극한 대립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최소 조치만 한다는 건가.
- “상임위 구성 전에도 필요한 일은 할 수 있다. 예컨대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됐는데,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할 수 있다. 또 물가 인상에 대한 긴급 조치도 특위를 구성해 논의할 수 있다. 유류세 인하 폭을 50%나 70%로 늘릴 수도 있다.”
- ‘일방 독주’ 비판을 받을 거다.
- “물론 여당에선 항의할 거다. 그런데 법사위원장을 우리 몫으로 한다든가, 다른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하자는 게 아니지 않나. 의장단만 먼저 선출하고 가겠다는 거다. 국민들도 정상참작 해주실 거다.”
- 민주당의 요구는 뭔가.
- “제가 요구하는 건 지난 4월 (‘검수완박’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 합의로 돌아가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구성은 국민의힘 명단만 제출하면 된다. (‘검수완박’ 입법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법무부가 낸 건 어쩔 수 없으나, 합의 당사자였던 국민의힘은 취하해야 한다.”
- 이미 권 원내대표가 모두 거부했다.
- “우리는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했고, 지방선거 직전 추가경정 예산안도 그대로 처리했다. 이번에 법사위원장까지, 세 번을 양보했다. 거기에 또 굴복해라? 얼마나 안하무인격 점령군 같은 태도인가. 국민의힘은 단 한 번의 양보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 국회는 야당의 전장이다. 굴복하는 게 국민 마음을 얻는 길일 수도 있다.
- “어떤 국민이 그런 얘길 좋아하겠나. 국민의힘 지지하는 분들은 만세를 부를 거고, 민주당 지지층은 ‘당이 왜 이렇게 물러터졌냐’고 할 거다.”
박 원내대표는 이 대목에서 “지금도 문자가 왔다”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였다. 그의 휴대전화엔 문자메시지 6200통이 와 있었다. 박 원내대표는 “대부분 ‘법사위 양보하지 마라’, ‘저쪽은 배 째라는 식인데 왜 야당이 양보하느냐’는 내용”이라며 “저는 이런 부담을 안고도 국회 정상화를 위해, 권한도 없는 전임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법사위원장직을 넘기기로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 협상 진척이 왜 없다고 보나.
-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독박을 씌우려는 일관된 전략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독선과 횡포를 부려서 윤석열 정부가 일할 수 없다’고 야당 탓을 하며,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심판론을 띄우고 싶은 거다.”
- 또 다른 이유는 뭔가.
- “결국 키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다. 4월 합의 파기 때도 한 장관이 이준석 대표, 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지금도 한 장관이 사법개혁특위 구성, 권한쟁의심판 취하에 대해 키를 딱 쥐고 있다. 윤 대통령도 확고한 입장이 있을 거다. 권 원내대표는 그들을 설득할 처지와 능력이 안 된다.”
- 권 원내대표가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권 원내대표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핵심이라면 결단을 내리라는 거다. 하지만 ‘허세 윤핵관’이라면 방관할 수밖에 없을 거다. 국회 원 구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긴 어렵겠지만, 대통령도 당정 간 소통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국회 정상화를 위해 양보하라’고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6월 초 출범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인사검증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대신 대통령령을 수정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통제권을 부여하는 경찰국(가칭) 신설도 법 개정이 아닌 대통령령 수정으로 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시행령 정치’에 대해 “위헌·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시행령 정치에 어떻게 대처할 건가.
- “시행령이 모(母)법 취지에 어긋나면 본회의 의결로 부처에 수정검토를 권고할 수 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킬 거다. 더 나아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도 추진할 수 있다. 그 상황까진 안 가길 바란다.”
- 윤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못 누린다
- “대선과 지방선거를 진 정당의 지지율이 곧바로 회복되는 경우가 있었나. 새 정부 출범 초기라서 국민들은 야당을 좀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선거에 연패한 우리도 ‘하고 싶은 것 다 하겠다’는 객기와 오만을 버려야 한다.”
- 원내 전략의 문제일 수 있다. 지방선거 패배는 검수완박 입법 때문 아닌가.
- “전혀 영향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대선에서 진 거다. ‘검수완박’이라고 하지만,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부 조정인데도 여당은 ‘완전 박탈’이라는 폭력적 단어로 야당을 몰아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