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음민원 6만건 중 ‘폐쇄·사용금지’는 47건뿐
시민들은 헌재소장의 민원이라 해서 등산로를 즉각 폐쇄한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반응이다. 종로구 삼청동에서 50년 이상 거주했다는 주민 권모 씨(68·남)는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지 않느냐”며 “청와대도 시민들에게 내주고 나간 판국에 ‘길 막아달라’ 요구한 헌재나 민원을 덥석 받아준 문화재청이나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헌재소장 공관 진입로 초입에는 “삼청동 북악산 등산로를 주민에게 돌려주세요”, “헌재소장님! 길 좀 열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과잉예우 말라” 해도…“헌재 먼저 결정해야 연다”
헌재소장 공관 앞 삼청로 폐쇄 논란은 지난 5월 청와대 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수십 년 만에 한국금융연수원~춘추관 뒷길~백악정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다시 열렸지만, 헌재소장 측은 지난달 소음·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문화재청에 조치를 요구했다. 문화재청은 청와대 개방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일부터 길을 다시 닫았다. 주말 약 3000명에 달하던 등산객들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일었고, 특히 등산로와 함께 폐쇄된 삼청로 초입~공관 앞 삼거리가 헌재소장 공관 소유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확산했다.
문화재청의 ‘과잉 조처’ 논란은 앞서 정치권에서도 제기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그런 식(헌재 측)의 논리라면 소위 말해 북촌에는 관광객이 골목골목 얼마나 다니는데 다 폐쇄해야 한다는 말”이라며 “헌재 측에선 소장을 과잉예우하지 말라”고 했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헌재 쪽에서 (먼저) 검토가 되는 게 맞는 순서 같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자체 판단으로 등산로를 다시 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헌재, 27일 “문화재청과 공식 협의 시작”
헌재 측도 이날 등산로 폐쇄 논란과 관련한 회의를 열고 입장을 냈다. 헌재는 “등산로 개방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문화재청과 공식 협의를 시작했다”며 “논란을 종식할 수 있도록 등산로 관리 방안, 관리 주체 등 세부사항에 대해 조속한 시일 내에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헌재 측은 사흘 전인 지난 24일 “문제가 된 등산로는 헌재가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이 아니며,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성을 내려놓고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자는 데 청와대 개방의 큰 방향성이 있다”며 “사법부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데 오히려 파열음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투명성이 대세인 현시점에서 길을 닫아야 할 근거도 없는데 버티는 건 국민 정서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