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이나 생물자원관 등을 방문했을 때, 언뜻 보면 살아있는 동물 같은데 아니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진짜 동물 대신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박제가 전시된 경우죠. 박제는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그 동물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동물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있지만, 생물학적 자료로서 기록의 의미를 가지며 멸종위기종의 연구 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죠. 우리가 몰랐던 박제의 가치와 필요성은 무엇인지, 박제는 어떻게 제작‧활용되는지 동물 표본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서울대공원 동물표본실을 찾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동물 표본‧박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공원 동물 표본실을 찾았습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원 중 유일하게 박제사를 두고 자연사한 동물, 멸종위기종·희귀종의 골격 표본이나 박제 표본을 제작하죠. 수명을 다한 동물들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있는 윤지나 박제사가 표본을 왜 만드는지 설명했어요.
표본제작실에 들어가니 윤 박제사가 최근 만들고 있는 눈표범(설표)이 보였습니다. “일반 표범이랑 다르게 흰색 빛깔을 띠죠. 눈 덮인 암벽 지형에서 사는 굉장히 귀한 동물이에요. 거의 다 만들었는데 아직 수염을 못 붙였고, 바닥에 암벽 바위 느낌을 내려고 작업 중이죠.” 만져봐도 된다는 얘기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살짝 설표를 쓰다듬었습니다. “부드러워요.” “진짜 같아요.” 표본제작실에는 박제를 준비하며 스케치한 그림, 조소에 쓰이는 점토와 칼을 비롯해 설표의 발바닥과 코를 석고로 본뜬 것도 있었습니다. 이런 자료를 참고해서 박제를 하는 거죠. 미술 재료나 공구들을 많이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박주영 학생기자가 박제 과정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동물이 폐사한 뒤 보존 가치에 따라 박제 여부를 결정해요. 수의사가 부검을 마치고 내장을 제거하면, 박제사는 가죽을 벗기고 살점과 지방을 제거한 후 마네킹을 제작합니다. 마네킹에 가죽을 씌우고 눈·코·입 같은 데를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고 배에 절개선을 꿰맨 다음 색칠해서 마무리해요. 마지막으로 암벽이나 가짜 낙엽 등으로 꾸며서 서식지를 재현하죠.”
다 만든 표본은 수장고에 보관해요. 수장고는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 항온항습 설비가 되어있고,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벽은 내부의 온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외선을 차단하고 해충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모든 벽면에 창문이 없고 폐쇄되어 있죠. 자외선을 받으면 박제 표본의 털 색깔이 바래고, 해충이 침입하면 표본을 갉아 먹어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기적으로 해충 박멸을 위한 소독도 하고 있다고 해요.
어두운 수장고의 불을 켜는 순간 수많은 동물 뼈를 비롯해 거대한 호랑이 두 마리가 도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각종 새를 비롯해 평소 보기 힘든 동물까지. 이곳에 있는 건 동물 표본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어요.
윤 박제사는 지금까지 7~800마리 표본을 제작했고 서울대공원에서만 300점을 제작했는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표본이 이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앞에 있는 호랑이는 수컷이고, 이름이 코아인데 살아있을 당시에 되게 잘생긴 호랑이였대요. 싸움도 많이 해서 콧잔등에 상처도 있고 귀도 끝이 조금 찢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뒤에 있는 한울이는 암컷이라서 조금 체구가 작고요. 둘이서 동틀 무렵에 눈밭을 달려가는 웅장한 느낌으로 박제를 만들었어요.”
이래나 학생모델이 “어디까지 실제 호랑이의 것으로 만들어졌나요?”라고 물어봤어요. “뼈는 골격 표본으로 보여주기 위해 빼고 다 가짜로 만들고, 눈알 외에 털이나 수염, 발톱 모두 다 진짜라고 보면 돼요.” 이준우 학생기자가 가죽이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떼오는지 궁금해했죠. “네, 그렇게 해요. 저 호랑이도 사실 가죽이 약간 상해서 털이 막 빠졌거든요. 그래서 왼쪽 볼 쪽을 보면 약간 털이 어두운색인데, 다른 호랑이 털을 심은 거예요.”
박주영 학생기자가 방부제는 얼마나 사용해야 오래 보존이 가능한지 질문했습니다. “새의 경우 가죽에 방부제 가루를 스쳐 지나가듯 뿌려줘요. 그럼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이 가능한데, 제가 죽어도 이 표본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잘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많이 들죠.” 이래나 학생모델이 동물 표본 관리 방법을 궁금해했어요. 해충이 생기지 않았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생겼으면 소독해주고,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합니다. 연막탄으로 처리하기도 하고요. 부서진 데가 있으면 보수하는 작업도 박제사의 일이죠.
호랑이 머리 모형 만들며 박제사 되어보기
생을 마감한 동물들의 표본을 제작하는 사람이에요. 표본을 만들어서 전시관에 전시도 하고 학생들 교육도 해요. 제작한 표본이 상하지 않도록 온도 조절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게 약을 놓는다든지 관리하는 일도 박제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죠.
주영 박제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계속했는데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마음 한구석에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수의대 동물해부학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면서 골격 표본을 만드는 일을 처음 해봤고, 자연사 박물관에 갔는데 박제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이게 미술이라는 전공을 살리면서 동물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외국에서는 조각가들이 박제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용기를 얻어 이 길로 들어오게 됐어요.
사냥 문화가 많이 발달한 데가 박제 기술도 많이 발전한 편이에요. 미국을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는 동물도 별로 없고, 사냥이 대중적이지도 않으며 규제도 많이 하다 보니까 상업적인 박제보다는 공공기관에서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교육·연구 자료로 많이 만들었어요. 조류의 경우 예전부터 하시던 분이 많아서 수준이 높은 편이고요. 포유류는 하는 분이 잘 없다가 최근 많이 발전한 편이에요.
래나 박제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가장 보람 있고,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 너무 잘 완성되고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되게 뿌듯했어요. 힘들었던 점은 호랑이를 만들고 유튜브나 인터넷 뉴스에 많이 소개됐는데 동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동물을 괴롭히는 거다, 잔인하다 등 악플이 엄청 많았어요. 근데 저도 동물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조금 속상했죠. 이게 하나의 자료로써 후대 사람들의 연구·교육에 쓰일 수 있는 건데 그 가치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주영 ‘동물을 박제한다’라는 사실 자체에 불편한 시선이 있는데요. 박제의 진정한 가치와 필요성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신다면요.
과거 사냥꾼이 전리품으로 동물을 박제했기 때문에 더 그런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박제의 목적은 보존이에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멸종을 늦추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고요. 이런 연구 자료를 많이 만들어서 과학자들이 동물 연구를 더 많이 해서 그 동물을 보호할 수 있고 지킬 수 있죠. 표본을 전시해서 동물에 대한 교육적인 정보를 알려주고, 동물을 보호해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더 갖고 자연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후대가 멸종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죽은 동물도 자연이 남겨준 소중한 자원이기에 전시·교육·연구를 위해 한 번 더 활용해 그 가치를 찾고,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여러 가지 기술이 다 들어가요. 바느질도 해야 하고 무두질, 조각, 색칠도 해야 하고 이런 기술이 종합적으로 선물세트처럼 동원되니까 그런 게 재밌고요. 정해진 방법이 없어서 제가 방법을 찾아보고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것도 즐거워요.
래나 박제사가 되려면 해부학적인 면을 더 알아야 하나요 미술적인 감각이 더 중요한가요.
박제는 예술이랑 과학이 융합된 분야라고 보시면 돼요. 미술적인 손재주, 예를 들면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구도나 배치, 미적인 것들을 보기 좋게 만드는 것도 필요해요. 근데 기본적으로 해부학적인 정확성이 바탕이 돼야 하죠. 그 동물이 가진 생태적인 특징 등을 잘 나타내려면 그 동물에 대해 아주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주영 박제사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정해진 학과는 없고, 저처럼 조소과 등 미술을 전공하거나 생물학·수의학·생태학을 공부하면 도움이 되겠죠. 박제를 가르쳐주는 데도 없어요. 저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선생님 일을 도와드리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죠.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시험에 ‘박제 및 표본 제작공’이 있는데, 이 자격증을 획득하면 국가보호종인 천연기념물(동물) 박제가 허락되죠. 자연사박물관·동물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박제사를 채용할 때 이 자격증을 필수 지원 자격으로 공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합격자가 1년에 한두 명 나올 정도로 어렵죠. 자격증 소지자는 50명 이상인데 진짜 업으로 삼아서 일하는 분은 10~20명 정도예요. 박제사가 되고 싶다면 조금씩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동물에 대해 지식을 많이 쌓으면서 동물 그림 연습을 하고 손재주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준우 동물 표본과 박제사로서의 계획, 꿈이 있다면요.
세계 박제 대회가 있어요. 1, 2년에 한 번씩 유럽이랑 미국에서 번갈아가면서 열리는데 법적인 동물 반출 규정 때문에 나가기가 조금 힘들고 또 출장도 가기 힘들어서 아직 못 갔어요. 거기에 한 번 출품해서 상을 타보는 게 저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동물 박제 과정
동물원에서 동물이 자연사하면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합니다. 부검 후 동물 시료를 표본제작실로 가져오죠. 시료를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신체 부위별 치수도 측정하고 코와 발바닥 부위 등을 캐스팅(본을 떠서)하여 자료로 만들죠. 이후 해당 동물의 사진·영상 자료를 통해 생태적 특성을 공부하고 드로잉·축소 모형 제작을 통해 표본의 포즈와 구도를 계획합니다.
동물의 복부 중앙을 절개해 가죽을 몸통에서 조심스럽게 분리(스키닝)합니다. 이후 가죽에 붙어있는 살점과 지방을 제거하여 얇게 만들죠(견도). 이때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서늘한 환경에서 신속히 진행하는 게 중요해요. 견도 후엔 태닝이라는 화학 처리 과정을 거쳐 가죽을 최종적으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듭니다.
박제는 사람 마네킹에 옷을 입히듯, 동물 모양 마네킹을 만들어서 가죽을 씌우는 일입니다. 마네킹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히 그 동물이 살아있을 당시 실제 사이즈에 맞도록 제작해야 하죠. 일반적으로 우레탄폼 재료를 사용하는데, 스티로폼과 비슷한 재질로 무게가 가볍고 적당히 단단하여 잘 깎이고 쉽게 썩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마네킹에 접착제를 바른 뒤 가죽을 올려 원래 자리에 위치하도록 조금씩 움직여 제자리를 찾아줍니다. 절개했던 부위(복부·다리 등)를 바늘과 실을 사용해 봉합하고, 눈·코·입·발 등 세부적인 부위를 표현합니다. 자료를 참고하면서 정확하게 재현해야죠. 가죽을 씌우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정으로 호랑이의 경우 한 마리에 7~10일 정도 소요됩니다.
가죽을 씌운 후, 가죽이 머금고 있는 수분기가 없어질 때까지 건조합니다. 이때 가죽 모양이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해야 하며, 군데군데 핀으로 고정해 놓습니다. 건조 과정을 거치면 털이 없는 부위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바래기 마련인데요. 눈 주위나 코·입술 등의 부위를 해당 동물 고유의 색깔로 채색합니다.
해당 동물이 살던 자연환경까지 연출하는 것을 디오라마라고 합니다. 가짜 나무·바위, 눈과 얼음 등으로 주변을 꾸며 보는 사람들이 그 동물의 생태, 서식 환경까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는 겁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평소 박제된 동물을 보며 신기했는데, 박제에 대해 취재를 하게 되어 너무 설렜어요. 수장고와 작업실을 둘러보며 작업 중인 작품과 여러 박제 표본을 보았는데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았죠. 박제 표본도 만져 보았는데 가죽이 너무 부드러워서 진짜 동물을 만지는 느낌이었어요. 박제사님과 호랑이 모양 열쇠고리도 직접 만들었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지만 만들고 나니 뿌듯했고, 박제사님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어 새삼 존경스러워졌죠. 인터뷰에서 박제사님이 박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았어요. 박제는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는 생각도 심어주고, 후대에 연구 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므로 이 기사를 읽는 소중 친구들과 사람들이 박제에 대해 좋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박주영(서울 동북초 5) 학생기자
박제사는 조금 낯설어서 취재 전, 어떤 직업인지 알아봤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었고, 그만큼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우리가 만나게 될 윤지나 박제사님과 그 작업실이 매우 기대됐죠. 동물 표본실의 박제 동물들은 너무 ‘리얼(real)’해 무서울 정도였죠. 직접 만져볼 수 없었던 늑대와 호랑이는 표본인 것을 알면서도 선뜻 만지기가 어려웠어요. 사랑앵무새는 생김새만큼 피부도 부드러웠죠. 윤지나 박제사님을 인터뷰하면서 박제가 필요한 이유와 가치 등을 알게 되었어요. 또한 미래 과학자들이 생명체에 대해 연구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박제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이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더 많은 박제사들이 나와서 멸종하게 될 동물들을 그 모습대로 보존해 주길 바라면서도, 멸종하는 동물들이 더는 늘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래나(서울 창도초 6) 학생모델
평소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취재로 박제사와 동물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전에는 동물의 자유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동물원을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야생에서 쉽게 죽을 수 있는 동물들을 동물원으로 데려와 보호하면서 평균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박제된 동물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 중심을 잡고 있는 걸까?’ 궁금했는데요. 마네킹을 만들어 그 동물의 가죽을 씌우고 마네킹 안에 철심을 넣어주면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죠. 취재 이후 박제사와 박제에 관심이 생겼고요. 박제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박제한 동물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등등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을 바꾸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준우(서울 상명사대부초 6)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