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싶다"던 文의 책 추천…尹 인터뷰에 그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10:00

수정 2022.06.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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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 잊혀진 삶을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공개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마에 불을 때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는 모습을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SNS 캡처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귀향 후 첫 외출, 아버지ㆍ어머니 산소에 인사드리고, 통도사에도 인사 다녀왔다”는 글을 시작으로 지난 40여일간 15건의 글을 게시했다. 19일엔 인스타그램에 4건의 별도 글과 사진을 올리며 ‘SNS 소통’을 본격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글은 대부분 양산에서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일부는 정치 행위로 해석될만한 것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9일 『짱깨주의의 탄생』이란 책을 추천한 글이다. 문 전 대통령은 해당 책을 추천하며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 책은 곧장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9일 페이스북에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쓴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했다. 페이스북 캡처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이 글을 올리기 직전인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북한 눈치를 보는 굴종 외교는 실패했다는 게 지난 5년간 증명됐다”며 문 전 대통령의 외교노선과 결별할 뜻을 밝혔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이 갑자기 반중(反中) 외교를 경계하는 내용의 책을 공개적으로 추천한 것을 놓고 윤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정면 반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가 지난달 27일 트위터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다시 아버지로 돌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며 근황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이 사진의 배경에 찍힌 '실크로드세계사'라는 책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자, "편집자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문재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 트위터 캡처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도 “편집자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며 『실크로드 세계사』라는 책을 언급했다. 지난달 27일 딸 다혜씨가 공개한 문 전 대통령의 사진 속 배경에 등장했던 책이다. 낮잠을 자는 문 전 대통령의 옆에 놓여 있던 책이 지지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자, 출판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읽은 책’이라는 띠지를 만들어 책을 홍보했다.
 
지지자들이 열광했던 책에 직접 반응하는 글을 올린 것 자체가 스스로 말했던 ‘잊혀진 삶’과는 거리가 있다.
 
지방선거 다음날인 지난 2일엔 문 전 대통령의 실명으로 이재명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에 ‘좋아요’가 표시되는 일도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함께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전 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버튼을 누른 건 맞다”면서도 “조작 실수로 눌렸을뿐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는 친(親)문재인 진영이 이 의원의 보궐선거 출마를 선거 참패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해 총공세를 가하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나온 문 전 대통령의 ‘실수’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청와대 참모 출신의 민주당 의원은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을 퇴임 이후 만났는데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내가 해야 할 말이 있으면 하겠다’고 하더라”며 “사저 앞 시위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 외교 관련 언급 등이 스스로 밝힌 ‘해야 할 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또다른 인사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와중에 나오는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보복수사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야당 내 뚜렷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속적으로 ‘문재인 지우기’를 강조하자, 이에 맞서 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실제로 온라인에선 여전히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가 깨지지 않고 있다.
 
검색량을 수치화한 ‘구글 트렌드’에서 윤 대통령의 검색량 수치는 62포인트로, 같은 기간 문 전 대통령이 기록한 33포인트보다 2배가량 높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검색량 변화 그래프는 대체로 연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당수의 대중들이 전ㆍ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며 검색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한달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검색량 추이를 표시한 구글트렌드 그래픽. 전현직 대통령의 인터넷 검색량은 상당한 동조를 보이는 가운데, 양산 '욕설집회'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이 확인됐던 지난달 29일엔 문 전 대통령의 검색량이 급격히 치솟았다.

 
특히 문 전 대통령 측이 양산 ‘욕설 시위’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을 결정한 지난달 29일 문 전 대통령(52포인트)의 검색량 수치는 윤 대통령(54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시위를 한다”며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을 자극했고, 이는 윤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 보복성 ‘맞불 시위’로 이어졌다.
 

2008년 2월2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초기 한달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색량을 비교한 구글트렌드 그래프.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서해 공무원 사건 등으로 여권이 현재의 야당이 아닌 문 전 대통령과 전 정부를 직접 겨냥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존재감이 확대된 상태의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하는 모습의 정치구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