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입스 의심되는 롯데 지시완

중앙일보

입력 2022.06.21 11:16

수정 2022.06.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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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포수 지시완. [사진 롯데 자이언츠]

1994년 영화 '메이저리그2' 속 한 장면. 포수 루브 베이커는 투구를 받은 뒤 머뭇대다 공을 투수가 아닌 3루로 던진다. 주자가 없는데도 3루수에게 공을 준 건 그가 '입스'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심판에게 지적을 받은 베이커는 그제서야 힘겹게 투수에게 공을 돌려준 뒤 홈런을 친 것처럼 환호한다.
 
최근 프로야구에선 영화같은 장면이 나왔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 지시완(28)이 던진 송구가 투수 글러브를 한참 벗어난 곳으로 날아갔다. 실수라기엔 너무 잦았고, 내야수들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백업을 준비했다. 19일 부산 SSG랜더스전에서 2이닝 만에 교체된 지시완은 다음날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입스(yips). 압박감이 느껴져 불안이 증가했을 때 근육이 경직돼 평소에 쉽게 하던 동작을 하지 못할 경우를 말한다. 가장 입스가 흔한 종목은 골프다. 정지된 공을 치기 전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서다. 1920~30년대 활약한 골퍼 토미 아머를 통해 입스가 널리 알려졌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양궁, 당구 등에서도 나타난다.
 
야구에서 입스를 겪는 선수들은 대체로 짧은 거리 송구를 어려워한다. 투수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치명적이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래스 신드롬'이란 용어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스티브 블래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활약한 블래스는 데뷔 후 8년간 100승을 올린 투수였다. 하지만 1973년 삼진 27개를 잡는 동안 볼넷 84개를 줬다. 갑자기 제구가 되지 않아서였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입스를 고쳐보려 했던 블래스는 결국 2년 만에 은퇴했다.
 
포수에겐 잘 던지지만 내야송구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도 있다. 존 레스터가 대표적이다. 레스터는 포수 미트엔 정확하게 공을 꽂지만 1루 견제는 벗어나기 일쑤였다. 레스터는 아예 견제구를 던지지 않거나, 바운드 송구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으나 끝내 극복하진 못했다. 대신 입스를 받아들이고 더 정확한 투구에 집중했고, 통산 200승을 거둔 뒤 지난해 은퇴했다.
 
영화 속 주인공 베이커는 수없이 송구 연습을 해도 고쳐지지 않자 성인 잡지 광고를 주문처럼 외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입스를 극복하기 위해선 반복 훈련보다 멘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스포츠심리 상담을 받는다.
 
극단적인 경우엔 포지션을 바꾸기도 한다. 국가대표 포수였던 홍성흔이 그랬다. 그는 두산 베어스 시절 막바지 송구에 어려움을 느꼈고, 결국 포수 수비를 포기하는 대신 타격에 전념했다. 김주찬이나 박건우, 이정후처럼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꾼 선수들도 있다. 2000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5번이나 폭투를 범한 릭 앤킬은 타자로 전향했다.
 

롯데 포수 지시완. [사진 롯데 자이언츠]

지시완은 롯데에게 중요한 선수다. 안방이 고질적인 문제였던 롯데는 2020년 지시완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롯데 이적 2년차를 맞은 지난해엔 좋은 프레이밍(스트라이크 판정을 유도하는 기술)을 보여주며 타율 0.241, 7홈런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올해도 외국인 투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였다. 올 시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WAR·스탯티즈 기준)는 0.58로 전체 포수 중 8위, 롯데 포수 중에선 1위다.
 
지시완은 한 차례 입스를 극복한 적이 있다. 한화 이글스 시절 송구와 포구 모두 어려움을 느꼈다. 한화 코칭스태프의 도움과 지시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겨냈고, 2018년부터 1군 선수로 발돋움했다. 4년 만에 찾아온 불청객을 지시완은 어떻게 돌려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