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골다공증 부대' 악몽…40세 이상도 군복무, 푸틴 법 바꿨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06.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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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의 BBC 방송은 “푸틴 대통령이 계약제 군인 모집의 상한 연령을 없애는 법률 개정안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기존에는 ‘18~40세까지의 러시아인’ 또는 ‘18~30세까지의 외국인’만 지원할 수 있었다. 개정안을 통해 ‘40세 이상의 러시아인’도 모병에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2sus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행진 중인 러시아군. 로이터=연합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병력부족 현상을 완화하려는 조처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러시아 병역제도의 누적된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병역제도는 한국의 국방개혁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분야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걸어온 길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ㆍ어떤 순서로 하느냐가 더욱 중요

 
냉전시기, 소련은 복무기간 2년(해군은 3년)의 징병제를 시행했다. 냉전 붕괴 이후, 러시아는 징병제와 모병제를 병행하는 방식(징ㆍ모 혼합제도)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징집병사의 복무기간을 줄이면서 계약제 전문 직업군인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국방예산 부족으로 모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대부분 부대의 편성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일명, ‘골다공증 부대’가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 전문 직업군인만 이 전쟁에 투입하기로 됐는데, 징집병도 속아서 참전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AFP=연합

 
1994년 1차 체첸전쟁부터 문제점이 드러났다. 러시아 국방부는 부분 동원을 건의했으나,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은 반대 시위를 의식해 불허했다. 총참모부는 임시로 특수임무부대(Task Force)를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1개 사단에서 증강된 1개 연대를 편성하고, 부족한 병력은 나머지 연대에서 보충하는 방식이었다. 1개 여단에서 1개 대대전술단을 편성하는 현재 방식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특수임무부대는 편성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부대의 전투력이 희생됐다.


체첸 전쟁에서 징집병사의 희생이 늘어나자, 여론이 징병제 철폐를 강하게 주장했다. 정치권도 여론을 따라갔다. 2001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징병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2010년까지 계약에 의한 전문 직업군인으로 대체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2009년까지 확보한 전문 직업군인은 약 19만명으로 전체 병력(약 100만명)의 20% 미만이었다. 징병제 폐지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해 징집병사의 복무기간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고, 이들이 국경 밖 군사작전에 투입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복무기간 12개월은 훈련소에서 실시하는 기본 및 주특기교육 6개월과 전투부대 근무 6개월로 구성된다. 전술훈련을 숙달하기도 전에 전역할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이 징집병사의 국외 군사작전 투입을 금지한 것은 사상자 발생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 외에도 실질적인 전투력 발휘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력충원 방식의 이원화는 부대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평시에 징집병사와 계약병사가 같은 부대에 근무하다가, 국외 작전에 투입할 때는 징집병사들을 제외하기 위한 재편성이 불가피했다. 징집병사가 참전하기 위해서는 모병 계약서에 서명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일부 병사들이 “강요로 서명했다”고 증언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이다. 결국 복무기간, 병력충원, 부대구조, 전투력 발휘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모병제 전환은 위험

 
냉전 이후, 우크라이나도 징병제에서 징ㆍ모 혼합제도로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처우문제 등으로 모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현실을 무시했다. 2005년 초, 오렌지 혁명으로 집권한 친서방 정부가 2010년까지 징병제를 폐지하고 직업군인으로만 군대를 유지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JMTG-U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으로부터 M2 기관총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2013년, 모병을 통해 입대한 병력은 약 4만명으로 전체(12만명)의 30%에 불과했다. 그해 10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무책임하게도 징병제 폐지(2014년 1월 1일부)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없다고 믿었고, 여론이 지지했기 때문에 타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2014년 3월 11일, 국회에 출석한 이고르 텐유크 국방장관은 즉각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6000명에 불과하다고 실토했다.
 
2014년 8월, 크름반도 상실에 이어서 돈바스 분쟁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는 징병제도를 부활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복무기간을 18개월로 회복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복무기간이 12개월이었다면 전투력 향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2016~2021년, NATO가 다국적훈련단(JMTG-U: Joint Multinational Training Group-Ukraine, 야보리우 소재)을 통해 지원한 프로그램은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18개월의 복무기간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훈련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전투력을 보유한 예비군도 확보할 수 있었다. 개전 당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발령한 총 동원령도 이와 같은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전투력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가역적 병역제도는 신중히 

 
병역제도의 경우, 일단 시행되면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징병제 부활은 크름반도 상실과 돈바스 분쟁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가능했다.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한 대만조차 징병제 부활을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경험한 시행착오는 우리에게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각개전투 교장에서 돌격 훈련을 하고 있는 해병 신병들. 해병대

 
첫째, 준비되지 않은 징ㆍ모 혼합제도 시행은 복무기간 단축이나 징병제 폐지로 귀결되기 쉽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유혹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모병을 통해 적정 수준의 병력을 확보하기 전에 복무기간을 단축하거나 징병제를 폐지하여 상황을 악화시켰다. 개혁이나 혁신은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ㆍ어떤 순서로 하느냐’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둘째, 징병제 군대는 최소 18개월의 복무기간을 필요로 한다. 각개 병사가 제병협동작전 수행능력을 체득하기 위한 필수 기간이다. 제1ㆍ2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 프랑스는 복무기간을 12개월까지 단축한 적이 있다. 결국 짧은 복무기간으로 인해 마지노선과 같은 경직된 작전수행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패전으로 연결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셋째, 준비되지 않은 병사들을 전투에 투입하는 것은 전투력 발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체 복무기간의 변동이 없는 것을 전제로, ‘신병 기본훈련 기간’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군의 신병 기본훈련 기간은 현재 5주에 불과하다. 1970년대까지 10주간 이상 시행하다가 부대 확장에 따른 병력수급을 고려하여 축소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세계 모든 군사 선진국들은 10주 이상 시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무려 17주, 독일군은 1년 미만의 징병제 시기에도 12주였다. 한국군도 신병 기본훈련 기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입대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소양을 충실하게 가르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신병 기본훈련 기간 확대는 대대 이하 현장 전투부대의 부담을 줄여주고, 실질적인 전투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신병 기본훈련 기간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ㆍ연평도 도발 직후에도 있었으나, 준비기간 부족으로 중지된 바 있다. 훈련 프로그램 및 시설 예산 반영 등을 고려, 4~5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