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환’ 3중고를 버텨라

중앙일보

입력 2022.06.21 00:0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연합뉴스]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국내 기업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3고(高)’ 현상이 겹치자 주요 기업의 경영 키워드가 ‘위기 관리’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디스플레이·전기·SDI 등 전자 계열사 사장단 25명은 20일 경기도 용인의 삼성인력개발원에서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오전 7시30분 시작된 회의는 8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기술과 우수 인재 확보,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장단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전자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따로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는 수요 사장단회의를 2017년 2월 폐지한 바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삼성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의 현황과 전망, 사업 부문별 리스크 요인, 미래 먹거리 육성, 새로운 조직문화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국제 정세와 산업 환경,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며 기술 리더십 확보, 리스크 점검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21일부터 열리는 삼성전자의 상반기 글로벌 전략 회의에서도 공유될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사장단 회의 소집에 재계에서는 “삼성이 조만간 ‘비상 경영’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SK그룹도 지난 17일 ‘2022년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기업 가치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30여 명의 그룹 수뇌부가 참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의 사업모델이나 영역에 국한해서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현재의 사업 모델을 탈출하는 방식의 과감한 경영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엄중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경영 시스템 전반을 개선해야 실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다음 달 한국에서 해외 법인장 회의를 열고 글로벌 경영 전략과 주요 권역별 이슈를 점검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2년간 화상회의로 진행했지만, 올해는 대면회의로 연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공략, 반도체 수급으로 인한 생산 차질 대응 등이 화두에 오를 전망이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LG그룹도 지난달 30일부터 LG전자를 시작으로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별로 구광모 회장 주제로 한 달여간 전략 보고회를 열고 있다. 지난 2020년 이후 하반기 사업 보고회만 진행했던 LG그룹은 올해 3년 만에 상반기 보고회를 재개했다.
 
대외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되고, 수요가 줄어 실적이 급락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원자재 가격은 다락 같이 올랐다. 국제 유가의 경우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며 최근 며칠간 상승세가 꺾이긴 했지만, 연초와 비교하면 30% 이상 오른 상태다. 알루미늄·니켈·주석·아연 가격도 같은 기간 두 배로 뛰었다.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도 커졌다. 이달 들어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AA-) 금리는 3.8%대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수준이 됐다.
 
수출 환경도 좋지 않다. 금리 인상은 경기 둔화로 이어져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당분간 국내 내수시장이 경기 침체를 방어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 등이 오르며 기업 경영이 고비용 체제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