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화재 때 출장 변호사 "다 내 책임" 두눈 질끈 감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12 12:14

수정 2022.06.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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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숨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12일 오전 8시 30분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72)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9일 대구 수성구 법원건물에서 발생한 방화사건 피해자 5명의 발인식이 오전 7시부터 차례로 엄수됐다. 나머지 피해자 한 명은 전날(11일) 발인이 이뤄졌다. A변호사는 마지막 희생자의 발인을 지켜보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12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지난 9일 발생한 대구법원 인근 법률사무소 방화 참사 희생자 가운데 변호사 A씨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방화 용의자 천모(53·사망)씨가 불을 지른 곳은 A변호사와 이번 사건 피해자인 김모(57) 변호사가 합동으로 운영하던 법률사무실이었다. 경찰은 천씨가 과거 소송 결과에 앙심을 품고 A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참사 당시 A변호사는 다른 지역에 출장을 가 화를 면했다. A변호사는 “유족에 대한 지원 등 남은 가족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거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유족들은 가족을 떠나 보내며 통곡했다. 특히 이날 오전 8시쯤 사촌지간인 김 변호사와 김 사무장의 관이 차례로 나오자 장례식장은 눈물 바다가 됐다. 김 변호사 아내는 관을 쓰다듬으며 “집에 와야지”라며 흐느꼈고, 지인들은 “사촌들에게 무슨 이런 일이 생겼는지”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영정사진을 든 건 희생자의 자녀들이었다. 유족들이 통곡하자 영정 사진을 든 어린 딸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희생자 지인들은 “이렇게 떠나 보낼 순 없다”며 허망해했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합동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장례는 유족과 논의를 거쳐 대구변호사협회장장(葬)으로 치러졌다. 대구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법률사무소 방화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다음날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마지막에 영결식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현재 합동분향소에는 피해자 6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장례식장 특 104호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법무부 장관, 권영진 대구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 등의 근조화한이 놓여 있다. 합동분향소 단상에는 익명의 시민이 전달한 편지와 조의금도 함께 올랐다.


이 시민은 편지에서 희생자들을 향해 “당신들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기에 절만 하는 저를 부디 용서해달라”고 했다. 방화 용의자에겐 “귀한 목숨 스스로 버린 당신이여 얼마나 괴로웠냐. 이건 올바른 길이 아닌 걸 당신도 알지 않느냐”고 했다. 
 
이 편지는 지난 10일 사건 현장에서 건물 관리인이 발견해 대구시변호사협회에 전달했고 11일 오전 합동분향소에 놓였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 등도 합동분향소를 찾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건물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弔花)가 놓여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