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유모(25)씨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한 첫날 포기를 결심했다. 유씨가 이용한 길은 서울 서대문구의 ‘자전거 우선도로’였다. 뒷차가 경적을 울리다가 유씨를 추월해 갔다. 식은땀이 난 유씨는 인도로 올라왔지만, 이번엔 행인이 너무 많아 발이 묶였다. 유씨는 “결국 ‘따릉이’ 6개월권을 결제해 두고 묵히고 있다. 한강에서나 달리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차도·인도 위 자전거도로…이용자들은 ‘눈칫밥’
이 중 자전거 운전자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나 ‘자전거 전용차로’ 등 경계석 등으로 가시적으로 분리된 자전거길이다. 이런 도로는 전체 자전거도로의 9.5%다.
나머지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75.8%)와 자전거 우선도로(6.2%)가 ‘자전거도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자전거 운전자들은 “둘 다 이도저도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서울시 공용자전거 ‘따릉이’를 자주 이용하는 조모(24)씨는 이를 두고 “사실상 ‘차도냐 인도냐’의 선택지”라고 말했다. “차도도 인도도 눈치보인다. 차라리 하늘로 다니고 싶다”는 말도 나온다.
차도 위 ‘우선도로’…뒷차 경적·추월에 식은땀
이들은 자전거 우선도로라도 8차선 이상의 대로라 차들의 속도가 빠르거나 버스 등 대형차의 사각에서 주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인도 위 겸용도로 달렸더니 ‘아이, XX’
주 2회 이상 자전거를 타고 외출한다는 대학생 윤모(27)씨는 “자전거 도로를 보행자가 가로막고 걷고 있길래 벨을 울렸더니 ‘아이, XX’하고 욕을 하더라”며 “아마 인도니까 당연히 자전거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아예 자전거 길이 표시되어있지 않은 겸용도로도 있다. 이모(26)씨는 “군자역 인근 겸용도로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인도가 너무 좁고 울퉁불퉁하기도 했지만, ‘인도인데 자전거를 타?’ 하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그냥 내려서 끌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겸용도로를 눈에 띄게 색깔을 넣어 표시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자전거·보행자 모두 불안한 ‘동거’
자전거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 운전자와 보행자들도 불안을 느낀다. 운전자 김모(58)씨는 “운전자 입장에선 자전거 도로가 굉장히 신경쓰이고 불편하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자동차 책임이 되지 않냐”며 “어차피 자동차도로를 할애해서 자전거도로를 만들 거라면 적어도 명확히 분리를 시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용산역 인근 회사원 주모(26)씨는 “너무 대로이다 보니 자전거가 인도로 올라온다. 자전거와 행인들의 눈치싸움이 계속되는데 치일 뻔한 적이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박무혁 교수는 “한국은 차도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자동차의 총량을 줄여 자전거전용도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을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며 “운전자 입장에서 자전거는 거슬리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데 차도를 같이 공유하는 이용자라는 관점이 필요하고, 자전거 운전자들도 자전거도 동일한 법적 의무가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