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10시55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A빌딩(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3903㎡) 2층 203호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150명의 진화·구조대원과 소방차량 59대가 현장에 도착해 22분 만인 오전 11시17분쯤 불을 완전히 껐다. 하지만 203호에서 변호사와 직원 등 7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빌딩 내 다른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와 직원, 의뢰인 등 49명이 연기를 마시거나 열상으로 다쳤다. 이 중 31명이 인근 병원에 분산 이송됐다.
스프링클러 설치안돼 큰 피해 … 변호사들 ‘보복성 테러’ 충격
이날 불은 신고 후 20여 분 만에 꺼졌으나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해당 사무실이 폐쇄 구조였고, 불이 난 건물은 준공 당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 화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불이 난 203호실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직원 책상과 변호사 2명 사무실, 탕비실이 나온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다. 더욱이 사무실 위치는 2층 구석이다. 계단과 반대 방향이다. 사무실과 사무실을 연결하는 복도는 폐쇄 구조다. 이 때문에 화재 후 2층을 채운 연기가 순식간에 좁은 계단·복도를 따라 위층으로 번졌고, 연기 흡입 부상자가 47명으로 확 늘었다. 건물에 갇혔던 일부 직원은 소방관들이 건넨 방독면을 쓰고 나서야 현장에서 벗어났다.
익명을 원한 2층 다른 사무실 관계자는 “상담을 하던 중 굉음과 진동이 느껴지길래 놀라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이미 출입문 손잡이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며 “몸으로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을 때 다른 사무실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고 빠르게 대피했다”고 말했다.
7층인 이 건물은 일부 지하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2017년 화재예방·소방시설 설치 유지법 시행령을 고쳐 6층 이상 건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 빌딩은 그 이전에 준공됐다. 현행법상 6층 미만 건물도 바닥면적이 1000㎡ 이상이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건축물 대장상 해당 빌딩의 바닥면적은 520~532㎡로 대상이 아니다. 소방당국은 “방화셔터 설치 대상도 아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한 중년 여성은 “사고가 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의 아내”라며 울먹였다. 그는 “남편에게 아무리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된다”며 “우리 남편은 넥타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여성도 장례식장 문을 열고 들어와 “사무실 직원인 남편이 사망했는지 확인하려고 왔다”고 했다. 이내 두 사람은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만나냐”며 손을 맞잡았다. 사망을 확인한 유족들은 “내 가족이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울부짖었다.
법조계는 ‘보복성 테러’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이석화 대구시변호사협회장은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들러 “이번 사건으로 변호사들이 크게 충격을 받았다”며 “재판 패소 후 원한이 생기지 않도록 지원·상담을 해주는 제도 등을 정부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변협도 성명을 통해 희생자를 애도하고 “사법체계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자 야만행위”라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대구변협 측은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방화 용의자의 재판을 담당했던 변호사와 이야기했는데, 소송에서 일부 패소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들었다”며 “가해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피해자들이 (경제적인) 구제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검찰의 범죄 피해자 구조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