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IPEF 가입에...中, 남태평양 활주로 확보 '이곳' 노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29 16:39

수정 2022.11.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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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남태평양의 섬나라로 향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피지가 남태평양 섬나라로는 처음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미국 정부가 공식 발표했다. IPEF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경제공동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국의 가까운 파트너이자 지역의 리더인 피지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깨끗한 경제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더해 IPEF에 중요한 가치와 관점을 보탤 것”이라며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지난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친중 노선을 걸어왔던 바이니마라마 정권의 전격적인 IPEF 가입은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피지 방문을 하루 앞두고 전격 발표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지의 결정이 태평양 섬나라를 놓고 벌어진 전투에서 미국에 다소의 안도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다른 남태평양 국가보다 중국과 관계를 상대적으로 더 정교하게 관리해 왔다. 피지는 중국의 자금 대출이 자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거부하는 등 친중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실익을 따져 왔다.

피지, 中 왕이 방문 하루 전 참여
中, 하와이 3000㎞ 옆 활주로 보수
괌 700㎞ 미크로네시아 포섭 추진도

피지에서 예상하지 못한 외교적 실패를 맞봤지만 중국의 남태평양 공략은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 지난 26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남태평양 8개국을 순방 중인 왕이 부장은 활주로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위치한 하와이에서 3000㎞ 떨어진 키리바시의 칸톤 섬에 있는 활주로 보수 사업을 중국이 지원하기로 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중국이 남태평양에 침투 거점을 확보해 미국과 호주에 대항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난 27일 왕이 부장은 타네스마아마우 키리바시 대통령 겸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과 그 파트너들은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는 데 전력을 집중하며 온갖 궁리를 하고 있다”며 바이든 미 행정부를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진흥은 이미 역사의 필연이자 정당한 권리”라며 “중국이 핵심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개도국이 굳게 지지하는 것은 곧 개도국 자신을 지지하는 것이며, 중국이 개도국을 돕는 것 역시 중국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이 부장과 키리바시 대통령은 회담 직후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공동 건설, 기후 변화에 따른 재해 방지, 인프라 정비, 관광, 민생 등 협력 문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중국과 키리바시 양자 협력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칸톤 섬의 활주로 보수 지원이다. 이번 협력 문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키리바시 정부는 지난 2021년 5월 보수 사업 조사 보고서에서 중국 측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인정했다. 칸톤 섬의 활주로는 수도인 타라와와 연결되는 상업 비행을 위한 민생 용도라지만, 상주 인구가 수십명에 불과해 활주로 보수의 진짜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키리바시는 지난 2019년 솔로몬 제도와 함께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중국은 지난 4월 솔로몬 제도와 체결한 양자 안보 협정을 키리바시와도 추진하고 있다.
 
사모아 공항 건설도 중국이 지원을 약속했다. 왕이 부장은 28일 사모아에서 팔레올로 국제공항과 태평양 지역 국가 종합 스포츠 경기인 퍼시픽 게임 경기장 건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다음 공략 목표는 인구 10만여 명의 미크로네시아 연방이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미국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외교와 국방을 위탁하는 ‘자유 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 Amendments Act)’을 맺고 있다. 현행 협정의 갱신 기한이 2023년으로 임박했지만 아직 갱신은 타결되지 않았다.
 
특히 미크로네시아의 야프 섬은 미국의 핵잠수함과 전략 폭격기가 주둔하는 괌 기지에서 700여 ㎞ 위치에 자리한다. 중국이 만일 이곳에 기지를 둘 수 있다면 중국 본토 방어나 미군의 접근 저지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요지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의 이이다 마사후미(飯田將史) 연구원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미군의 행동을 제약하려는 전략적 목적 달성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