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비토 뻔해도 대북제재 표결 부친다…미국이 노리는 것

중앙일보

입력 2022.05.26 17:47

수정 2022.05.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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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들어가는 원유와 정제유를 더욱 줄이고, 담배 수입도 막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6일 오후(현지시간) 표결에 부치는 새 대북 제재 결의안의 핵심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되더라도, 표결 자체가 중·러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게 한ㆍ미의 판단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촬영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모습. [AFP=연합뉴스]

유류 죄고 담배도 금지

외교부에 따르면 안보리 이사국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신규 결의안의 최종본(blue text)을 회람했다. 
 
표결 24시간 전 회람이 원칙인데, 이번 결의안에는 북한의 연간 원유 수입량을 400만 배럴→300만 배럴로 줄이고, 정제유 수입량을 50만 배럴→37만 5000배럴로 축소하는 조치 등이 담겼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공식 석상에서 마스크를 벗고 줄담배를 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듯 담뱃잎과 담배 제품의 대북 수출 금지도 포함됐다.

지난 3월 한ㆍ미ㆍ일 등 유엔 회원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공동 규탄하는 모습. 유엔 웹 티비 캡쳐.

비토 뻔하지만…

문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veto)'다. 표결이 시작되면 15개 이사국은 각각 찬성, 반대, 기권 의사를 표명하는데, 9개국 이상이 찬성하는 동시에 상임이사국 5개국 중 어느 한 곳도 반대해선 안 된다.
 
즉, 미국이 자국 포함 9개국의 찬성을 이끌어내더라도 중ㆍ러가 반대하면 부결이다. 중ㆍ러는 2019년,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코로나19로 인한 민생고를 이유로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추진했는데, 지금도 제재가 북핵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한다.


안보리가 이미 합의한 조항도 비토권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2017년 12월 채택된 결의 2397호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경우 대북 원유ㆍ정유 반입을 더욱 제한하도록 결정한다"는 '트리거(triggerㆍ방아쇠)' 조항을 뒀다. 일종의 자동 개입 조항이지만, 이 또한 별도의 결의 채택이 필요해 중ㆍ러가 반대하면 활용할 수 없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미국은 자국의 신규 대북 독자 제재를 유엔 안보리 차원으로 확대하려고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보류'를 요청해 관련 논의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럼에도 표결 시도 이유는…

다만 한ㆍ미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는 것 자체가 '압박 신호'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북한이 2017년과 똑같이 ICBM급 도발을 거듭하는데 그땐 제재에 찬성하다가 지금은 딴 소리를 하는 중ㆍ러의 '말 바꾸기' 행태를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또한 중국은 최근 유엔 등 다자 협의체에서 미국에 대항해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는데, 이런 이중적 행보로는 국제사회의 리더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의안이 부결되더라도 표결에 부친 이상 공식적인 안보리 문서로 남아 향후 중ㆍ러를 압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중ㆍ러가 사실상 '자기 부정'을 하며 유엔 안보리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러, ‘자기부정’해야

안보리에선 표결 전후로 이사국이 각국의 선택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곤 한다. 또 지난달 미국 주도로 채택된 결의에 따라,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열흘 안에 총회에서 회원국을 상대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안건 토론' 제도도 마련됐다.
 
중국과 러시아로선 거부권 행사에 따른 외교적 부담이 느는 셈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중ㆍ러의 반응을) 예단하지 않겠다"면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ㆍ러도 책임 있는 약속을 계속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 중ㆍ러 압박 효과와 함께 안보리의 무기력한 구조 역시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어찌 됐든 안보리가 신규 대북 제재 부과에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한ㆍ미가 함께 고민해야 할 리스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