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있는 서구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차별과 혐오의 자유까지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다. 2020년 인권위 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73.6%는 “성소수자도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낸 차별금지법안은 고용ㆍ경제행위ㆍ교육ㆍ정부 서비스 등 4개 공공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며,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규제하지 않는다. 인권위에 진정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으며, 피해자에게 보복했을 때에 한해서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가령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거나 사적 대화에서 혐오 표현을 했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단 차별 입증 책임을 가해자 쪽에 둔 것은 현행 민사소송법 일반 원칙에 어긋난다. 성별ㆍ장애ㆍ나이ㆍ용모 등 신체조건ㆍ종교ㆍ성적 지향ㆍ성별 정체성ㆍ학력ㆍ고용형태 등 21개 차별금지 사유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2000)의 차별금지 사유는 성ㆍ인종ㆍ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ㆍ재산ㆍ성적 지향 등 14개다. 우리와 달리 고용 형태나 학력은 차별금지 사유에 빠져 있다. 기업들이 민감해하는 대목이다.
오늘 국회 법사위에서는 관련 공청회가 열린다. 법 제정 추진 15년 만의 첫 회의다. 국민의힘은 “선거를 겨냥한 민주당의 일방적 공청회 강행”에 반발하고 있어 파행도 예상된다. 사실 지금껏 차별금지법은 진보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지만, 평등권·인권에 진보·보수가 있을 수 없다. 『왜 차별금지법인가』의 이주민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적극성이 부족한 큰 이유로 “평등주의가 진보주의자의 전유물로서,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은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오해”를 꼽았다. “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제한하기 위해서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을 법으로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라면, 차별금지법은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수권 정당이 된 국민의힘도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소수자 인권 보호가 다수의 인권 침해가 아니듯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차별을 모르고 살았더라도 어느 순간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할 수 있다.
법 제정 추진 15년만의 첫 공청회
서구 선진국선 '필수적인 법' 인식
인권 앞에 진보·보수 따로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