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9만여 쌍이 결혼하고, 또 다른 10만여 쌍은 이혼하는 시대. (지난해 국내 혼인 19만2507건, 이혼 10만1673건) 안방 예능에도 이혼 소재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미 이혼한 ‘돌싱(돌아온 싱글)’ 개개인을 조명한 예능은 있었지만, 부부가 이혼을 고민하는 갈등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예능의 등장은 새로운 흐름이다.
지난 16일 첫 방송을 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도 비슷한 포맷이지만, 오은영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차별점이다. 그간 주로 육아 문제를 다뤘던 오 박사가 갈등을 겪는 부부를 관찰하고 고민을 나눈다. 오 박사는 제작발표회에서 “많은 상담 프로그램에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부부 갈등을 다룬 적은 없다. 이혼 위기에 있는 부부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혼 예능’의 원조 격인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지난달 8일 시즌2를 시작했다. 시청률(6%대)도 꾸준하다. 그룹 유키스 전 멤버 일라이와 레이싱모델 출신 지연수 등 이혼한 유명인이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리얼리티다. 신동엽·김원희·김새롬이 이들을 관찰한다. 5월 2주차 비드라마 TV 프로그램 화제성 조사(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 MBC ‘놀면 뭐하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혼 예능이 쏟아지는 건 관찰 예능의 인기가 지속하면서 제작자들이 새로운 관찰 거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이혼을 금기시하던 사회 인식이 바뀐 영향도 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가족 구성을 둘러싼 사회 제도나 관습에 대해 과거보다 자유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며 “사생활 공개에도 거리낌이 없다 보니 금기시했던 것도 공개하기 시작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혼 상대와 편한 친구로 지내는 등 새로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거나,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포맷 등은 이혼 예능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평했다.
다만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전시하는 데만 치중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구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무감각해지는 상황에서 갈등을 관찰하는 예능은 자칫 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도 “방송이 일종의 ‘불구경하기’ 식으로 흥미만 유발한다면 자극만 남게 된다. 편집과 구성을 통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