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노골적으로 당파적인 국회의장 출사표가 언제 또 있었는지 의아하다. 의장은 법적·규범적으로 여야의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국회법 20조의 2는 의장으로 당선된 다음 날부터 임기를 마칠 때까지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의장은 입법부가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탱하듯이 다수당과 소수당(들)이 대화를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규범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의장은 동물·식물국회가 아니라 협력의 국회로 이끄는 의회주의자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의장이 해야 할 투쟁(?)이 있다면 다수당이 제도의 악용을 통해 다수결 입법 독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투쟁뿐이다.
당파성 앞세운 국회의장 후보들
견제-균형의 규범 역할과 상충
입법의 절차적 정당성 지켜져야
견제-균형의 규범 역할과 상충
입법의 절차적 정당성 지켜져야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는 데는 성문화 되지 않은 두 가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하며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 두 가지 규범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잊지 않는 자제를 말한다. 양당 지도자는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처럼 관용과 절제의 규범은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당파 싸움이 파멸의 나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레브츠키·지블랫).
국회의장은 ‘특정 정당의 피’를 내세우는 편협한 부족주의, 선민의식과 같은 닫힌사회의 세계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독단적 교조주의 등이 모두 열린사회의 잠재적 적들이다.”(『열린사회와 그 적들 I』 칼 포퍼). 포퍼는 열린사회는 우리가 얼마나 오류를 잘 범하는 가를 인식하는 지적 겸손을 아는 합리성에 기초한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출사표의 내용처럼 정권교체에 따른 강박증과 절대 다수 의석이 주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마법이 결합한 정치적 편집증을 지녀서는 안 된다. 과거에 국민을 대표하는 제 1 야당을 도둑놈으로 부르며 공존을 부정하던 적개심이나 5·18 기념식에 참석한 집권여당을 ‘독재자의 후예’라고 칭하며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인종주의적 편견과는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 친정 정당의 압력이 있더라도 중립 의무를 지키고, 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국회의장을 보고 싶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