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삭발·정당색깔 점퍼…‘교육’ 실종된 교육감 유세 현장

중앙일보

입력 2022.05.20 00:02

수정 2022.05.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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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됐다, 교육 교체 하자!”
 
19일 오후 빨간 점퍼를 입은 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종로구 정동길 선거사무소 앞 도로에 돗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친구인 안홍선 극동대 교수가 이발기를 들고 머리를 밀어줬다. 당초 조 후보의 제자가 머리를 밀어주기로 했지만 “차마 스승의 머리를 밀 수 없다”고 했다. 삭발식 3분 만에 ‘반삭’ 머리가 된 조 후보는 “정치 교육감 시대 끝냅시다”라며 행진을 시작했다.
 
이날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보수 성향 후보들은 결국 단일화 방식에 합의하지 못하고 각자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막판까지 단일화 줄다리기를 하던 보수 후보 중 조영달·조전혁 후보는 빨간 점퍼를 입었다. ‘정치 중립’ 때문에 교육감은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국민의힘의 상징색을 택했다.


조전혁 후보는 청계광장에서 지지자 100여 명과 출정식을 열었다. 그는 과거 새누리당 의원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했던 일을 강조하며 “전교조 아웃(out)” 구호를 외쳤다. 조전혁 후보 측은 “청계광장이 전교조가 집회, 시위를 많이 한 곳이어서 선택했다”고 했다.
 
박선영 후보는 아예 국민의힘 유세 장소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오전 용산역 광장에서는 국민의힘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이름이 박힌 빨간 점퍼를 입은 선거 운동원들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국민의힘 유세가 끝나자마자 박 후보가 유세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유세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박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자 자리를 떴다.
 
보수 후보가 난립하면서 3선에 도전하는 조희연 후보에게는 유리한 구도가 됐다. 이날 조 후보는 흰색 점퍼를 입고 노원역에 등장했다. 선거 운동원들은 녹색 옷을 입었다. 조 후보 관계자는 “특정 정당을 연상하게 하는 색은 선거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 양 당의 상징색을 최대한 피해 초록색을 선택했다”고 했다.
 
유세 현장에서 일반 시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선거 운동을 지켜보던 김모(81)씨는 “누군지 모르지만 춤추고 시끄럽길래 와봤다. 교육감이 뭔지 몰라서 자녀가 뽑으라는 사람 뽑으려 한다”고 했다.
 
이날 서울시교육감 보수 후보들의 선거운동에선 ‘교육감’이란 말을 빼면 교육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교육 정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정치, 대결 구도에만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정 정당을 연상하게 하는 색으로 맞춰 입는 등 정치인 유세를 답습했다. 교육감 후보 선거 운동은 ‘정치인보다 더 정치인 같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보수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교육계에서는 모두가 죽는 ‘치킨게임’에 돌입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곤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조희연 후보와 일대일 대결도 쉽지 않다. ‘분열하면 필패’를 보수 후보들도 알면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 수정: 기존 기사 중 "세명의 보수 후보들은 모두 빨간 점퍼를 입었다"는 문장을 "조영달·조전혁 후보는 빨간 점퍼를 입었다"로 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