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휴민트(HUMINT) 선구자’가 남긴 전주의 맛
“맛의 도시 전주, 대표 음식점을 찾습니다.”
전주시 표현대로 옛부터 전주는 ‘맛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2012년에는 국내 유일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도 됩니다. 그러나 정작 전주의 한정식과 백반이 식도락가에게 극찬을 받게 된 원류(源流)는 제시하지 못했답니다. 전주만의 음식이나 조리법이 기록된 고문헌 등이 거의 없어섭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표음식이 없으니 여러 음식을 내놓는 한정식이 유명해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답니다.
전주 음식 뿌리 적힌 포크의 일기장
외국인인 포크가 한국인도 남기지 않은 음식기록을 남긴 경위는 사실 우연에 가깝습니다. 조선 말기인 1884년 11월 10일 주한미국공사관 대리공사로 전라감영을 방문한 게 시작입니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호남·제주를 관할하던 행정기구로, 행정·사법·군사를 맡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입니다.
상차림 그린 후 번호까지 매겨…9첩 넘어
관찰사 밥상을 대하는 감흥도 매우 구체적입니다. "오전 10시에 아침상이 들어왔다.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수많은 음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등의 방식입니다.
그는 일기에 "저녁이 되자 나를 위한 연회가 열렸다. 상을 채우고 있는 둥글고 작은 접시에는 10명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이 쌓여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실로 환상적인 날이다. 이곳 감영은 작은 왕국"이라는 말도 남깁니다.
138년 전 조선 팔도 유람한 미국인 포크
포크는 당시 조선말과 영어에서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알 정도로 조선말을 곧잘 했다고 합니다. 포크는 "나는 (전라감사에게) 씨(seed)·배(pear) 같은 단어는 발음이 영어와 비슷하다고 말해줬다. 그 덕택에 서로의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져서 잔치 분위기가 났다"고 썼습니다. 밥(Pap)·왕(Wang)·감사(Kamsa)·아전(Achon)·현감(Hiengam) 등 고유명사는 발음 나는 대로 영문으로 표기합니다.
“조선말 구사…영어와 발음 비슷한 단어도 알아”
그는 조선의 단위인 리(里)와 푼(分) 등을 언급했고, 사물의 색까지도 정확히 기술해놓았습니다. 나주(Naju)·주막(Chumak)·산성(Sansung)·광주골(Kwangju-Kol)·영남루(Yongam-nu) 등을 그림으로 그리고 방위도 표시합니다.
사실 포크의 조선행은 그리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2년 뒤 포크를 조선에 파견한 게 그 배경입니다. 당시 미국은 양국의 통상조약을 통해 갓 수교한 동양의 낯선 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포크를 보낸 겁니다.
美, '정보 수집' 조선 파견…"고종·명성황후 신임"
외국인인 포크가 한반도를 누빈 데는 당대 최고 권력자인 민영익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포크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수집의 선구자(HUMINT Pioneer)'라고 평가했을 정돕니다. 휴민트란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를 합성한 말로, 사람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뜻합니다.
음식점 2곳 선정…“9첩·5첩 밥상 준비 중”
전주시는 2018년부터 송영애 교수와 함께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을 복원해 왔습니다. 포크 일기를 비롯해 전라감영 관찰사를 지낸 서유구의 『완영일록』,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 고문서를 참고해 고증을 했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모를 통해 관찰사 밥상을 판매할 음식점 2곳도 선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상차림은 정찬상(9첩 반상)·소찬상(5첩 반상)·국밥(소고기뭇국·피문어탕국) 등 세 종류 입니다.
일기에 날짜·장소·시간 정확히 기록…"조리법 유추"
포크의 일기가 전주 음식사에서 갖는 가치는 송 교수의 설명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포크가 기록한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은 전주의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최고(最古)이자 최초(最初)의 기록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의 음식문화 연구가 매우 적은 데다 다른 감영 관련 기록에도 음식 내용이 없는 현실에서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