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 책임연구원은 “차량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상승하는 ‘카플레이션’(Carflation, Car+Inflation) 현상은 2020년 하반기부터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난과 제조원가 상승 등 복합적 원인으로 일어났다”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완성차 업계의 수익성 우선 전략과 환경 규제 강화로 시장에서 저렴한 차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터진 러-우 전쟁은 기름을 부었다.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러시아산 네온·팔라듐과 우크라이나산 와이어링 하네스(전선 뭉치) 등 부품 공급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최근 “러-우 전쟁이 코로나19 이상으로 자동차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자동차 가격 상승을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반도체 공급난의 대책으로 수익성이 높은 차종을 더 많이 생산하는 곳이 늘고 있다. 판매 대수 감소에 따른 실적 하락을 상쇄하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중형 SUV GV70만 봐도 알 수 있다. 2022년형 가솔린 2.5L 터보 모델의 기본 가격은 4995만원이다. 그런데 올 초 출시한 전동화 모델의 기본 가격은 7809만원이다.
세부 옵션과 전기차 보조금을 고려하지 않고 본다면 두 모델의 가격 차이가 3000만원 가까이 난다. 이는 전기차 가격의 30~5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 때문에 생긴 것이다.
문제는 배터리의 원자재 가격이 올해 들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니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3위 니켈 생산국인데 러-우 전쟁 이후 공급 불안으로 폭등세를 보였다. 지난 3월 t당 4만5795달러까지 올랐다. 지난해 말(2만925달러)의 두 배 수준 이상으로 급등한 것이다.
니켈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양극재에 60% 이상 들어간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니켈을 90% 이상 함유한 하이니켈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도원빈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원은 “러-우 전쟁 이후 공급 차질에 대한 불안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배터리 등 전기차 전환의 주요 소재인 니켈은 주요 비철금속 중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는 당장 차량 가격 상승의 원흉으로 꼽히지만, 장기적으론 저렴한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전기차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2만 개 이하로, 3만 개가 넘는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보다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전기차의 가격은 향후 계속 내려갈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기존 완성차 업체에서도 서서히 변화 움직임이 보인다. 홍광 미니의 성공에서 기회를 엿본 미국 GM이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GM은 지난달 일본 혼다와 함께 3만 달러(약 3800만원) 수준의 전기차를 2027년부터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매리 바라 GM 회장은 “운전자가 원하는 저렴한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혼다와 제휴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