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수립 후 74년 간 12명의 역대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갔다. 첫 이름인 ‘경무대’가 푸른 기와집이란 뜻의 ‘청와대’로 바뀐 건 윤보선 전 대통령 때다. 고려시대 왕궁 터,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되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총독관사가 지어지며 지금의 부지를 형성했다. 그간 대통령 경호상 문제로 일반인에게는 행사 때만 일부 개방됐는데,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이날부터 전면 개방됐다.
경내 개방에 앞서 이날 오전 6시50분 춘추문을 통해 청와대 남측면으로 북악산에 오르는 등산로가 먼저 개방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숙정문을 통과하는 청와대 뒤 성곽길을 개방했지만 춘추문에서 곧장 이어진 등산로가 열린 건 처음이다. 이준자(56)씨는 “가고 싶어도 못 가던 길인데 1번으로 가게 돼 들뜬다”고 말했다.
20분쯤 걷자 작은 정자인 백악정이 나타났다. 정자 오른쪽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심은 느티나무가, 왼쪽에는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심은 서어나무가 서있었다.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8일 SNS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나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이 두 나무가 조화될 수 있게 느티나무가 아닌 서어나무를 심었다’고 했다고 썼다.
백악정을 지나자 좌측으로 청와대 전경이 펼쳐졌다. 모습을 드러낸 관저를 보고 “저기 관저 보인다”며 탄성을 지르는 시민들도 있었다. 특히 경복궁 너머로 시청까지 이어지는 광화문 광장 일대가 또렷이 보였다. 새로 개방된 길을 돌아 춘추문으로 돌아오는 데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을 데리고 이 길을 자주 오르며 단합대회를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후인 2004년 4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이 길을 찾아 자신의 처지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ㆍ봄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청와대 정문은 11시37분에 개방됐다. 학생 등 미리 선정된 국민대표 74인이 봄을 알리는 매화를 들고 먼저 입장했다. 이날 학생들을 데리고 청와대를 찾은 장영희(54) 매동초 교장은 “청와대가 시민들 품으로 돌아와 감격스럽다. 아이들과 녹지원에서 수건돌리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문이 열리자 푸른 기와의 본관이 가장 먼저 보였다. 1991년 완공된 본관은 역대 대통령이 주로 주 집무실로 쓰던 공간이다. 내부 입장이 막혀 시민들은 유리문 너머로 레드카펫을 구경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후 본관에 도착해 “기수(김기수 수행실장)야, 사무실에 우째 가노?”라고 물었다고 한다. 출입문에서 15m를 걸어야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집무실 크기에 압도당했다는 일화다.
녹지원을 지나 남서쪽으로 걸으니 참모들의 업무동인 여민관이 보였다. 여민관은 1~3관으로 이뤄져 있는데, 통상 본관 집무실을 이용한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문 전 대통령은 참모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취임 후 여민1관 집무실을 주 집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3월 당시 김은혜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이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올라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자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뛰어가면 30초, 걸어가면 57초”라고 반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청와대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넉넉잡아 1시 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빈을 맞는 영빈관을 지나 다시 정문으로 돌아왔다. 문 전 대통령은 9일 오후 이 길을 걸어서 퇴근했다. 청와대 정문으로 퇴근한 마지막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