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말도 전하게 될 '바이든의 입'…성소수자 흑인 여성 대변인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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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 함께 나선 현직 젠 사키(오른쪽) 대변인과 후임 커린 장-피에르 대변인. EPA=연합뉴스

백악관의 ‘입’이 바뀝니다. 젠 사키 현 대변인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첫 백악관 브리핑을 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는 못 보았던) 제대로 된 브리핑 진짜 오랜만이다”라며 미국 출입기자들이 속시원해 한다라는 기사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속절없군요. 사키 대변인은 오는 13일 정식 퇴임하며 바통을 카린 장-피에르에게 넘깁니다. 1977년생인 장-피에르 대변인이 오는 21일로 예정된 윤석열 당선인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의 브리핑을 지휘할 인물이 되는 거죠.  
 
 
경험 없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넣어두세요. 장-피에르는 현 부대변인이자 바이든 대통령의 언론 홍보 담당으로 오랜 기간 함께 해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장-피에르의 임명을 발표하면서 “백악관 대변인은 어려운 자리이지만 커린은 경험과 재능 그리고 성실성 등 모든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커린은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위해 미국 국민을 대표해 일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사키 대변인 역시 장-피에르를 기자들에게 자신의 후임으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친구이자 역사를 새로 쓸 인물”이라고 추켜세웠죠.  
 
 

아이티 출신 프랑스계 부모님의 장녀로 태어난 장-피에르 신임 백악관 대변인. 원색 패션을 즐깁니다. AFP=연합뉴스

사키와 장-피에르는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충성도와 여성이라는 점은 같죠. 그러나 장-피에르는 사키와 달리 흑인이고,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입니다. 이 두가지 면에서 장-피에르는 ‘최초’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장-피에르는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소수자들의 정당한 기회를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께 감사하며, 감정이 북받치게 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자리는 그러나 나 한 명의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로 돌아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을 낮췄습니다.  
 
미국에선 성소수자들의 결혼이 합법이죠. 장-피에르의 혼인 파트너는 현 CNN의 대(大)기자 격인 수잔 말보입니다. 둘은 딸을 입양해 워싱턴DC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장-피에르는 아이티 출신의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택시기사였던 아버지와 복지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뉴욕 퀸스에서 성장했습니다. 장녀였는데, 생업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돌보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정치에 눈을 떴고, 콜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한 뒤 정치 컨설턴트 및 언론 홍보 전문가로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백악관 대변인은 챙겨야 할 현안이 중요한 것만 수십 가지에 달하죠. 지난 2월 부대변인 시절 장-피에르 신임 대변인이 갖고 다니던 파일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빼곡하네요. AFP=연합뉴스

 
파트너인 수잔 말보 기자도 콜럼비아대 석사이고, 박사는 하버드에서 취득했다고 합니다. 기자와 정치인 공보 담당 커플이라니, 미묘하지만 둘은 업무적으로는 선을 분명히 지키며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말보 기자는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등 대통령을 다수 인터뷰했습니다만, 자신의 파트너와 관계된 바이든 대통령과는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1월 백악관 행사장에서 부부 자격으로 참석한 장-피에르(가운데 빨간 옷) 당시 부대변인과 그의 파트너 수잔 말보 CNN 기자(그 바로 옆 검은색 옷). 안고 있는 아이는 입양한 딸입니다. AP=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젠 사키 대변인의 다음 행보인데요. 악시오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MSNBC 방송국에서 정치 관련 코멘테이터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쇼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키 대변인 본인은 이를 공식 인정한 적은 아직은 없지만 부인도 하지 않았죠. NCND(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것)은 이런 경우 대다수 긍정에 해당합니다. 국내에서 언론사에 근무하다 청와대로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인 것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흥미로운 건 장-피에르 역시 MSNBC에서 정치 관련 코멘테이터를 했던 적이 있다는 겁니다.  
 
 
사키 대변인의 행보가 그렇다고 떳떳하게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미국 기자단에게도 그렇죠. 사키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지금 그 대변인 석에 서서 우리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는 당신이 곧바로 언론사로 넘어간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라는 질문을 가장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으로 곤욕을 치르게 한 기자는 다름 아닌 MSNBC의 백악관 담당 수석 기자였죠.  
 
 
장-피에르는 21일 윤 당선인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내용을 어떻게 전하게 될까요. 윤 당선인 측의 대변인들과는 어떤 합을 보여주게 될까요. 취임식이 바로 다음주로 다가온 지금,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