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중대재해법 100일, 법 취지 살려 사망사고 줄이자

중앙일보

입력 2022.05.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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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1호 중대재해 사고'로 기록됐다.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법 시행에도 제조업·건설업 중대재해 여전    

지침·해석·매뉴얼 보완해 불확실성 낮춰야

지난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늘로 100일을 맞았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별로 줄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이달 3일까지 중대산업재해가 59건 발생했고, 94명의 노동자가 숨지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법 시행 후 하루 한 명꼴로 노동자가 쓰러진 것이다. 사망사고는 주로 제조업(45.8%)과 건설업(37.3%)에서 발생했다.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김용균씨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2020년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됐고, 경영자 등의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법이 올해 초 시행됐음에도 중대재해가 계속되는 현실은 참담하다.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산재 사고를 막지 못한 경영책임자는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의 목표는 책임자 처벌보다는 산재 예방이다. 적용 범위나 처벌 대상이 불명확해 불확실성이 크다는 기업의 하소연을 무시해선 안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관련 지침·해석·매뉴얼 등을 보완해 산업계의 혼선을 줄이겠다고 지난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
 
대기업은 그나마 로펌에 자문하고 전문가를 채용하며 불확실성을 줄이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504곳을 조사한 결과, 중대재해법의 의무사항을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곳은 50.6%에 그쳤다. 현장이 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2024년부터 50인 미만 영세기업까지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산업재해 예방 강화 및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이 들어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만들고, 고위험 공정의 소규모 사업장을 지원하며, 산재 예방 종합포털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을 정비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정확하게 만들어 경영자의 안전 의무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대비해야 충분한지 알 수 있어야 예방조치를 하고 현장교육도 할 수 있다. 판례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4일 인사청문회에서 산재 사망사고를 막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김용균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