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검찰뿐 아니라 거의 전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무줄 회의'라는 사상 초유의 꼼수까지 동원해가며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끝내 본인과 그 무리를 지키는 불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공포했다. 관련 뉴스를 전해 듣자마자 이상하게 위의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이달 말 발표하는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토끼』(2017)의 표제작 '저주토끼'의 첫 문장인데, 저주의 섬뜩한 작동 원리를 담은 말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묘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가까이 두기 무서울 만큼 흉측해선 안 되고 늘 옆에 끼고 싶을만큼 예쁜 물건이어야 한다. 그래야 저주가 통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그래서 더 무섭다. 예뻐 보이는 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진짜 예쁜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새 나를 파멸로 이끄는 저주의 도구일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그런 맥락에서 노골적인 '문재인 정부 방탄법'인 검수완박이야말로 딱 그런 저주 걸린 법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문 대통령과 그 무리 눈에 너무나 예뻐 보여서 홀리듯 삽시간에 온갖 불법과 꼼수를 불사하며 기어이 통과시켰지만 훗날 후회할 날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분노하는 국민은 아랑곳없이 지금 당장은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불법과 비리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정권 사람들 모두 쾌재를 부를지 모른다. 대통령 친구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울산시장 사건, 탈원전이라는 이념적 도그마에 빠진 대통령의 한마디에 벌어진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정권 실세 이름이 줄줄이 나왔는데도 흐지부지된 라임·옵티머스 사건, 여기에다 어느새 묻혀버린 대장동 사건까지. 문재인 청와대와 민주당이 협업해 일궈낸 검수완박 승리로 굵직한 정권 비리 전부가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하게 됐다고 안도할지 모른다.
과연 뜻대로 될까. 과거 행태로 보자면 늘 검찰보다 권력 앞에 재빠르게 드러누웠던 경찰이 이번만큼은 검수완박의 입안자 의도대로만 움직일 거라 믿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 같다. 경찰이 목을 죄오면 그땐 또 거대 의석을 무기 삼아 경수완박(경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칠 텐가. 그래 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지금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너무나 뻔뻔한 모습에 허를 찔려 잠시 넋이 빠져있지만, 죄짓고도 벌을 안 받겠다는 권력자들을 단죄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다시 돌아와(※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저주토끼'에서 내 이익 좇느라 멀쩡한 남의 집안 풍비박산 낸 사장은 처음엔 아무 벌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저주가 깃든 물건인지 모르고 토끼 전등을 쓰다듬으며 좋아했던 철모르는 사장의 손주였다. 그다음은 죽은 자기 아들(손주)이 그랬던 것처럼 이 토끼 전등에 집착하다 건드리기만 하면 뼈가 부러지는 고통 끝에 죽은 사장의 아들이었다. 직접적인 저주에 걸리지 않았던 사장 역시 끝내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오는 9월 법 시행으로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후에 결국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누가 철없이 저주 물건에 손을 댄 손주인지, 그 저주를 물려받고 죽은 아들인지,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간 사장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모두 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