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피에르 상 티 코스 양도 원해요”
지난 3월에 문을 연 서울 이태원 구찌 오스테리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 달씩 열리는 좌석은 대부분 예약 시작 후 2~5분 사이 모두 마감됐다. 이탈리아의 유명 셰프 마시모 보투라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구찌가 전 세계 네 번째로 문을 연 공간이다. 메인 다이닝룸 28석, 테라스 36석으로, 5~7개의 코스 메뉴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품 메뉴와 와인 등을 낸다. 7코스 기준 가격은 1인당 17만원이다.
그동안 패션 매장에서 카페를 내는 경우는 많았지만 유명 셰프와 협업해 본격적인 다이닝 코스를 낸 명품 브랜드는 국내서 구찌가 최초다. 루이비통 역시 한정된 기간에만 운영되는 레스토랑이지만, 메뉴는 물론 접객과 서비스 모두 최고급 미식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옷과 가방을 만들던 이들이 왜 굳이 까다로운 파인 다이닝에 도전하는 걸까.
구찌 접시 위 음식, 구찌 수트 입고 접객
“체류 시간 때문이죠.”
긴 시간 머물게 하려면 양질의 콘텐트가 필요하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경험보다 더 직관적으로 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미식 경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물론 미식 경험은 단순히 음식의 맛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일 찾은 구찌 오스테리아는 온통 구찌, 구찌였다. 의자와 테이블, 스툴, 테이블 위 접시와 집기들은 모두 홈컬렉션 ‘구찌 데코’의 제품들이었고,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벽지와 조명, 바닥재 등에선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 수석디자이너의 미학이 엿보였다. 직원들은 세심하게 짜인 이탈리안 코스 메뉴를 구찌 로고가 수놓인 수트를 입고 날랐다.
이름값만? 최고 미식 경험으로 ‘고급’을 재정의
대신 이런 것은 어떨까. 특별한 날, 좋은 옷을 입고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의 레스토랑에 간다. 공간에 들어서면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가 루이비통 가구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한 오리가미 꽃(종이로 접은 꽃)이 천장을 수놓고 있다. 벽에는 박서보 작가의 그림이 자리한다. 레스토랑 한쪽에는 루이비통의 상징적인 제품인 트렁크로 만든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 함께 참여했던 피에르 상 셰프가 직접 준비한 여덟 코스의 음식과 와인이 제공된다.
“좋은 물건은 쌔고 쌨지만, 좋은 경험은 진귀하죠.”
“이렇게 살고 싶다”…브랜드 세계관에 스며드네
프랑스 고속철 테제베(TGV)에 비빔밥을 납품했던 이력이 있는 한국계 프랑스인 피에르 상 셰프는 한국적 재료를 활용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인다. 피에르 상 at 루이비통에서도 명이나물을 곁들인 스테이크나 쌈장 소스 등을 낸다. 두 문화의 세련된 어우러짐은 문화와 예술을 중시하는 루이비통의 세계관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정민 대표는 “지금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판매하는 시대”라며 “이른바 ‘구찌적인 삶’‘루이비통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고 즐기면서 보다 직관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의 레스토랑 오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는 한국 파인 다이닝 업계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최근 고급 식당에 대한 수요가 훌쩍 높아졌다. 강지영 음식 평론가는 “(이들 레스토랑은) 단순히 유명 브랜드와 유명 셰프의 만남이 아니라 디테일(세부)을 살린 메뉴 구성과 공간 설계 등 높은 수준의 미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문화를 받아들일 만큼 국내 미식 업계가 성장했기에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명품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식음료 업장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