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시 개막을 위해 방한한 그는 “정교하지 못한 알고리즘과 봇, 이런 것들이 이미 우리의 현재를 망치고 있다”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상을 무조건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수많은 자동화 서비스가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흥미로운 건 그가 현대사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풀어놓는 방식이다. 일본과 독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조감독으로 활동했고, 오스트리아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특한 이력은 감각적인 영상으로 예술과 철학, 정치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사물 인터넷, 로봇 공학, 3D 시뮬레이션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파고들며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했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도 남다르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에 역동적인 사운드, 그리고 객석이 어우러진 전시장은 영화 세트처럼 연출돼, 그 자체가 하나의 설치작품이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진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 작품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단순화한 ‘소셜 시뮬레이션’으로, 가상공간이 현실 공간을 적극적으로 대체하는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등록되고 개인이 감시받는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과 유머를 ‘안 보여주기’란 제목의 영상으로 풀어낸 것도 기발하다. 게릴라 매뉴얼 형식으로 첨단 감시사회에서 ‘안 보일 수 있는 방법’ 5가지를 제안하는데, ▶카메라에 찍히지 않거나 ▶우리 자신이 이미지가 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나 ▶시야 밖으로 나가거나 ▶이미지 세계에 아예 병합돼 버리는 방법 등이 있다고 알려준다.
디지털 사회를 연구한 그는 알고리즘과 NFT 예술을 어떻게 볼까. 그는 “알고리즘은 역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NFT 예술에 대해선 “극소수 작가만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미술시장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헨에서 미국 MIT 출신 물리학자인 독일인 아버지와 웨슬리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에서 실험영화 및 비디오 담당 교수로 일한다. 『스크린의 추방자들』(2012), 『면세 미술: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2017) 등 여러 책을 펴냈다. 파리 퐁피두센터(2021), 뒤셀도르프 K21(2020),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2019),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2016)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 구겐하임, 테이트 모던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