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름대로 새 출발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결과가 ‘아름다운 늙은이’로 마무리하자는 소원이었다. 삶 자체와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우선 외모부터 미화시켜야 한다. 몸단장이다. 70~80대의 후배 교수들이 “나야 늙었는데” 하며 허름하거나 초라한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옷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의상이 아닌 품격 있고 조화롭게 입어야 한다. 쉬운 일도 아니지만 관심에서 멀어지면 “나 편하면 그뿐이지” 하는 습관이 더 앞선다. 그래서 모임에 나갈 때나 강연장에 갈 때는 신사다운 품격을 갖추기로 했다.
아흔 넘기며 친구들도 다 떠나가
“아름다운 늙은이 됐으면…” 소원
외모부터 신경, 옷차림 품격있게
노욕 줄이고 지혜 키우려고 애써
지금도 생각나는 선배 둘의 향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유산
“아름다운 늙은이 됐으면…” 소원
외모부터 신경, 옷차림 품격있게
노욕 줄이고 지혜 키우려고 애써
지금도 생각나는 선배 둘의 향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유산
아침 세수 후에 꼭 화장품 사용
그러나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서는 더 큰 과제가 있다. 아름다운 감정과 정서적 건강이다. 생각과 감정을 미화시켜야 한다. 옷이나 얼굴보다 몇 배나 힘든 정신적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욕이다. 나이 들수록 욕심은 줄이고 지혜가 앞서야 한다. 그런데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자제력이 약해지면 젊었을 때 채워보지 못한 노욕에 빠지기 쉽다. 욕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거기에 치매까지 겹치게 되면 보기 싫은 늙은이가 된다. 손주와 싸우는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내 주변에는 그런 늙은이들은 없다. 그런데 돈과 명예 때문에 노욕을 부리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은 잠재돼 있다. 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거나 장년기에 갖지 못했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서는 욕심, 다시 말하면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지혜로운 늙은이는 그 욕망의 대상을 후배들에게 돌린다. 후배와 제자들을 칭찬해 주며 키워주는 선배가 되어야 한다.
나 같은 나이가 되면 자제력이 약해진다. 좋지 못한 옛날의 습관이 튀어나온다. 칭찬보다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잠재력 때문에 혼자서 대화를 독차지하기도 한다. 내 주장이 옳다는 자세다. 수준 낮은 정치인과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지도자들도 실수를 한다. 대화의 분위기를 해치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존경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침묵과 겸손이 미덕이라는 예절을 지키지도 못한다.
심한 고통 중에도 미소 간직
지금 나는 존경스러운 두 선배를 기억에 떠올린다. 철학과 선배인 정석해 선생이다. 미국에 갔다가 97세 일 때 찾아뵈었다. 20년이나 연하인 나를 귀빈과 같이 대해 주었다. 그 말씀과 향기가 너도 늙으면 나같이 품위 있는 인격을 갖추어 달라는 자세였다. 나를 그렇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또 한 사람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황 목사님이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예전과 다름없는 미소와 사랑이 풍기는 표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김○○ 장로의 얘기를 듣고 오신 것 같습니다. 제 건강은 괜찮습니다. 공연히 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회복되면 또 교회에서 뵈어야지요…”라면서 여전히 온화하고 밝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20여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교우들에게 어렵고 힘들다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정석해 교수는 4·19 교수 데모를 주도한 애국자였고, 황 목사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생애를 보낸 분이다. 두 분에게는 애국심과 청소년들을 위한 기도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 인격과 삶 자체의 향기와 모습을 끝까지 간직하였다. 아름다운 노년기는 역시 수양과 인격,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있다. 보통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풍성한 마음의 열매였다. 나는 과연 고귀한 인생의 목표를 갖추었는가를 묻게 된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선한 인생의 결실이다. 이웃과 사회를 얼마나 사랑했고 무엇으로 보답했는가 는 생애의 유산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