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 "삶 포기하려 했던 팬, 제 경기가 희망 줬대요"

중앙일보

입력 2022.04.26 06:30

수정 2022.04.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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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의 복귀전에서 챔피언 출신 아오키 신야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47세 파이터 추성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투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김성룡 기자

“방금 두 시간 운동하고 왔습니다.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죠.”
 
2년 만의 복귀전에서 승리한 추성훈(47)에게 ‘푹 쉬었냐’고 묻자 “경기 다음 날부터 다시 훈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1975년생, 만 47세로 격투기 선수로는 할아버지 격인 추성훈을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났다. 추성훈은 “나는 20대 선수와 달리 시간이 많지 않다. 이 나이에 넋 놓고 쉬면 다시 컨디션과 체력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옥타곤(8각링)에서 이겼을 때의 쾌감은 내가 좋아하는 술과 라면 등과 맞바꿀 만하다. 닭가슴살 먹다 소고기를 맘껏 먹은 게 경기 후 가장 큰 일탈”이라며 껄껄 웃었다.
 
추성훈은 지난달 2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원챔피언십 ONE X 대회 종합격투기 라이트급(77kg급) 경기에서 아오키 신야(39·일본)를 2라운드 TKO로 이겼다. 라이트급 챔피언 출신 강자 아오키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었다. 2020년 2월 셰리프 모하메드 전에선 1라운드 KO승을 거둔 추성훈은 2년 만의 복귀전에서도 KO로 이기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복귀전에서 아오키 신야(왼쪽)의 안면에 왼손 펀치를 꽂는 추성훈. [사진 원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아오키의 일방적인 초크 공격을 견뎌낸 추성훈은 2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55연타 펀치 세례를 퍼부으며 역전 드라마를 썼다. 추성훈은 “아오키가 그래플링(메치기·태클·꺾기) 초고수라서 태클 방어 훈련만 두 달간 수천 번 했다. 그런데 경기 시작 30초 만에 아오키에게 초크(목 조르기) 공격을 당해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됐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1라운드에만 두 차례나 탭(경기 포기)하려 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져도 욕할 사람 없겠다. 고생한 게 아깝지만 이쯤에서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쓰러져 가던 추성훈을 일으켜 세운 건 팬들의 목소리였다. 1라운드 후반 관중석에선 “섹시야마(추성훈 별명)”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추성훈은 “숨을 못 쉬어 기절 직전이었다. 그때 이 소리를 들었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여기서 관두면 멋도 없고, 팬들에게도 미안할 것 같아 이 악물고 버텼다. 1라운드가 끝나자 아오키 눈빛엔 자신감이 사라졌더라. 이때다 싶어 2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았다”며 역전의 비결을 밝혔다.
 
추성훈의 승리는 한·일 양국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추성훈은 “경기 후 일본 팬들로부터 수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6시간 동안 꼼짝 않고 답장만 했는데도 전부 답변하기엔 부족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내 또래 중년 팬의 글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사업에 크게 실패해 희망이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한 직후 당신 경기를 봤다. 열정과 끈기에 감복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며 고마워하더라. 또 다른 팬은 ‘암 투병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는데, 경기를 본 뒤 병마를 이길 때까지 싸우기로 했다’고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아내인 일본인 모델 야노 시호는 든든한 후원자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 사랑이는 여전히 아빠의 경기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추성훈은 “사랑이는 아빠가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싫어한다. 이번에도 퉁퉁 부은 얼굴로 집에 온 아빠를 보고 울었다. 그래도 아내는 새로운 도전을 항상 응원한다”고 말했다.
 
추성훈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50세까지 싸우는 꿈을 꾼다. 최종 목표는 챔피언이다. 추성훈은 “2003년 유도 세계선수권 당시가 내 운동 인생에서 가장 컨디션 좋고 자신감 넘쳤던 시기다. 정확히 19년 만에 그때 기분이 다시 들었다. 전성기를 다시 맞은 느낌”이라며 “올해 하반기에 한국에서 경기를 하고 싶다. 그 다음엔 챔피언 도전이 목표다. 은퇴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