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복귀전에서 승리한 추성훈(47·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에게 '한 일주일쯤 푹 쉬었냐'고 묻자 "경기 다음 날부터 다시 훈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1975년생, 만 47세로 격투기 선수로는 할아버지 격인 추성훈을 지난 22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났다. 추성훈은 "나는 20대 선수와 달리, 시간이 많지 않다. 이 나이에 넋 놓고 쉬면 다시 컨디션과 체력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타격 능력이 출중해 승승장구했다. 2009년 ‘격투기의 메이저리그’ UFC에 진출해 전성기를 달렸다. 지든 이기든 화끈한 난타전을 벌여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 경기인 2020년 2월 셰리프 모하메드 전에선 1라운드 KO승을 거둔 추성훈은 2년 만의 복귀전도 KO로 이기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추성훈은 "아오키가 그래플링(메치기·태클·꺾기) 초고수라서 태클 방어 훈련만 두 달간 수천 번 했다. 그런데 경기 시작 30초 만에 아오키에게 초크(목 조르기) 공격을 당해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됐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1라운드에만 두 차례나 탭(경기 포기) 하려 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져도 욕할 사람 없겠다. 고생한 게 아깝지만 이쯤에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추성훈은 아오키전을 준비하며 그 어느 때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웰터급(84㎏) 선수로 평소 체중이 90㎏인 그는 아오키 체급에 맞추기 위해 13㎏를 감량했다. 일본 유도 남자 국가대표 하시모토 소이치(73㎏급) 등과 함께 매일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렀는데, 이번이 내 격투기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최선을 다해준 아오키가 고맙다"고 말했다. '만약 2라운드에 이기지 못해 3라운드를 치러야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라고 물었다. 추성훈은 망설임 없이 "3라운드를 했다면 내가 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무엇보다 내가 아오키에게 지기 바라던 많은 안티 팬들이 사라져서 신기했다. 90% 이상의 메시지가 나를 응원하고 축하는 글이었다. 하루 아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 진심을 사람들도 알아줘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내 또래 중년 팬의 글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사업에 크게 실패해 희망이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한 직후 당신 경기를 봤다. 열정과 끈기에 감복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며 고마워하더라. 또 다른 팬은 '암투병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는데, 경기를 본 뒤 병마를 이길 때까지 싸우기로 했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가장 친한 후배 격투기 선수 김동현(42)도 추성훈의 경기를 보며 심경의 변화가 왔다. UFC 웰터급 랭킹 7위였던 김동현은 2017년 이후로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뭉쳐야 찬다' 등 예능 프로를 누비고 있다. 추성훈은 "동현이도 내 경기를 보며 다시 싸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더라. 지금은 방송에서 맹활약 중이지만, 파이터 시절 이긴 뒤 전율을 나를 통해 느낀 모양"이라고 말했다.
추성훈은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난생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그는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강연을 통해 도전의 연속이었던 내 인생 스토리를 전하겠다. 내가 누군가의 영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이자 일본인 톱 모델 야노 시호(46)는 든든한 후원자다. 추성훈은 "아내는 내가 겪은 모든 일을 곁에서 지켜봤다. 새로운 도전을 항상 응원한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야노와 2009년 결혼했다.
추성훈은 "신경 안 쓴다. 격투기와 올림픽과 달리, 스포츠엔터테인머트 사업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패션과 방송을 즐기면 된다.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오키가 나처럼 못하기 때문이다. 아오키도 능력이 된다면 패션쇼, 예능 프로도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내 이름을 건 격투 서바이벌 쇼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는 "빨리 경기를 하고 싶다. 올해 하반기 한국 대회를 개최해 내가 출전하는 것을 원챔피언십과 상의 중이다. 그다음엔 챔피언 도전이 목표다. 은퇴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욕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려던 찰나, 추성훈은 "챔피언이 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깜빡했다"고 말했다. 딸과 약속이었다. 그는 "사랑아, 조만간 아빠랑 한국에서 캠핑카 타고 전국 팔도 돌며 맛있는 거 먹자. 데이트 해줄 거지?"라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