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원준의 미래를 묻다

[김원준의 미래를 묻다] 과학인재 허브 구축해 글로벌 패권경쟁 넘어야

중앙일보

입력 2022.04.25 00:36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눈앞에 온 기술안보 시대

김원준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캐나다 토론토가 테크기업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애플과 아마존, 구글이 연구소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토론토 중심부에 연구소 및 사무실을 오픈했다. 메타버스의 선풍에 큰 역할을 한 메타(전 페이스북)도 토론토에 엔지니어링 허브를 구축했다. 토론토의 인구는 지난 10년 사이에 10% 이상 증가했다. 도시의 절반이 캐나다에서 태어나지 않은 시민이다. 이른바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인재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토론토가 인재 허브로 성장한 데에는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AI)의 대부격인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가 이곳에 거주한다. 힌턴 교수로 인해 토론토대는 AI 연구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대학과 협력하기 위해 글로벌 테크기업이 몰려들기도 했다.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캐나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한몫 거든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 기업이 하이테크 관련 기술자를 유치하면 2주 안에 비자를 발급해주도록 조치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1년 안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토론토, 테크기업 중심지로 부상
미·중 다툼에 ‘제2 실리콘밸리’로
 
미국서 쫓겨난 중국 인재들 몰려
옛 소련도 과학인력 유출로 홍역
 
기술생태계 대혼란, 한국엔 기회
미 대학·기업과 파트너십 강화를
 
중국의 해외학자 1000명 유치 계획


미래를 묻다

그런데 캐나다와 토론토를 인재 허브로 성장시킨 중요한 요인은 미·중 패권경쟁이다. 첨단과학기술 중심의 미국 대학과 기업 생태계는 중국·인도를 비롯한 각국의 이공계 유학생 인재들의 천국이었고,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들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글로벌 과학기술패권을 유지해 왔다. 미국 내 외국인 STEM(과학기술 공학 및 수학) 분야 전공자의 수는 2017년까지 꾸준히 증가해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 10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49만여 명이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 외국인 학생들에선 중국이 단연 1위였다. 그만큼 중국인 인재 유입은 미국 경제력과 과학기술 경쟁력의 큰 버팀목이었다.
 
이때 중국이 미국 경쟁력의 이 핵심을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미·중 패권경쟁이 촉발되기 시작한다. 즉, 중국의 천인계획이 그것이다. 2008년부터 향후 5~10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해외 학자와 교수 1000명을 국가 차원에서 유치하는 과감한 사업이었다. 그리고 그 주 대상은 미국이었으며, 이를 통한 미국의 기술 유출 우려,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중국의 빠른 기술혁신 추격 등에 위협을 느낀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들어서면서 중국 유학생들의 유입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으로 중국 유학생들의 비자 발급은 통제됐고 중국의 과학기술 인재들은 점차 미국을 등졌다. 중국인이 빠져가면서 미국 산업계에선 항의가 빗발쳤고 대학들도 연구인재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이들 인재들은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근처 캐나다와 싱가포르 등으로 적을 옮겼다.
 
트럼프 규제로 혜택 본 캐나다
 

지난해 6월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2021 한반도평화 심포지엄’에서 미·중 패권경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의 비자 규제 덕분에 가장 덕을 본 국가가 바로 캐나다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3년간 미국의 대학과 기업들은 캐나다에 2만여 명의 고급 인재들을 빼앗겼다고 한다. 이 기간에 캐나다에 영주권을 신청한 미국 기반 하이테크 인재들은 두 배로 늘었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중국인이거나 아시아계 인재들이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랴부랴 지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반이민 정책을 폐지하거나 수정하기 시작했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을 담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에 있어서 워낙 급한 나머지 중요한 사안을 놓친 것이다. 바로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라는 점이며, 이제 미국은 인재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안보가 강화되고 국가와 기업의 연구개발(R&D)이 점차 R&DP(연구개발 및 보호)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내 인재 공동화가 점차 문제가 되고 있다.
 
옛 소련도 결국 인재유출로 인한 과학기술 인재 공동화로 힘을 잃었다. 소련은 원래 과학 인재에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한 국가였으며, 정권에 반기를 든 반체제 인사라도 과학기술 인재면 ‘국내’로 추방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의 붕괴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거치는 동안, 소련의 기초과학 분야 우수한 인재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급격히 빠져나갔고, 지금의 미국과 유럽의 과학기술 경쟁력에 일조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인재 유출로 국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기술 인재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이란 보고서는 미·중간 기술 경쟁은 곧 인재 전쟁이라는 점을 이제야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아무리 공공연구개발 투자가 많고 훌륭한 산업지원정책을 갖더라도 과학자와 엔지니어 기업가로 구성된 과학기술인재 생태계가 없다면 미래 패권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인재 확보 총력전
 
이런 생태계가 바로 인재 허브다. 이 인재 허브에서 신기술이 창조되고 신시장이 열린다. 기술 허브를 이끄는 것은 기술 인재이며 돈은 인력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기술패권을 지키고자 하지만, 동시에 인재 허브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미국 패권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인재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미국·일본·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쿼드)를 구축해 인재 공동전선을 펴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4개국 쿼드 설립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각국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과학·기술 등의 석박사 과정을 밟게 하는 ‘쿼드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하원이 최근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를 신설하는 내용의 ‘한국 동반자법’ 수정안을 처리한 것도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 이 수정법안은 정보기술(IT)·엔지니어링·수학·물리학·의학 등 전문 분야의 대졸 이상 한국 국적자에 대해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안보를 핵심으로 두고 있는 신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미국·중국·북한·일본과 복잡하게 얽힌 지정학적 한계를 대체 불가능한 첨단산업과 과학기술로 극복하고, 오히려 관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첨단과학기술 혁신역량이 필요하다. 즉, 지정학적 한계를 넘어 기정학적(기술정치학적)인 중추국가로 우뚝 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가. 바로 인재 허브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 인재를 중심으로 공동화가 시작되면서 전개되는 미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혼란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위기는 한국에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캐나다와 또 다른 성격의 인재 허브로서 한국의 입지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달리 중국과 맞닿아있고 미국과의 가치동맹, 혁신동맹으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한국이 메우며 첨단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역량을 배우고 내재화할 절호의 기회이다. 미국과 과학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과학기술 분야 인재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이다. 중국의 천인계획은 일방적인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미국의 심기를 거슬렸다. 우리는 상호호혜적인 한국의 천인계획을 세우고, 미국과 적극적인 과학기술 협력을 통해서 차세대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미국도 중국을 대체할 인재협력 국가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
 
신성장 산업의 새로운 활로
 
물론 한국의 인재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파트너로 첨단 과학기술분야,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인재 유출이나 인재유치가 아닌 인재 순환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한국 대학과 미국 기업, 미국 대학과 한국 기업들이 서로 글로벌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력은 시장 규모가 작아 성장의 한계를 겪는 신성장 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도 있다.
 
한가지 고무적인 점은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인재 허브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글로벌 차원에서 대기업들이 몰려든다. 현지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도 괜찮다. 업종에 구분 없이 허브에서 인재를 찾는다. 창업 벤처기업들도 어떤 허브보다 수없이 탄생한다. 인재 허브에선 누적 지식이 별로 먹히지 않는다. 보다 창조적이기 위해선 지식의 통합을 더 중요시한다. 특히,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연구 중심 대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당장 글로벌 인재 체인의 허브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경제안보의 성공은 한국이 과학기술 인재의 허브로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원준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다.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과 혁신전략정책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다. 기술경영경제학회장,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에서 재료공학사, 서울대에서 무기재료 공학석사, 기술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 경영대학 리서치펠로우와 뉴욕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탄력성장』이 있다.

 
김원준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