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포브스가 집계하는 전 세계 억만장자 순위 87위(러시아 6위)인 '러시아 철강왕' 알렉세이 모르다쇼프는 유럽연합(EU)이 제재 목록에 올린 어떤 개인보다 순 자산이 높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서방의 제재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와 달리 모르다쇼프는 이를 적극적으로 헤쳐나가기로 했다"라고 WSJ는 전했다.
포브스가 집계하는 현재 그의 자산은 185억 달러(약 23조원), 제재 전인 지난해엔 이보다 100억 달러 이상 많은 291억 달러(약 36조원)였다. 그가 지분 77%를 보유한 세계 40위권이자 러시아 최대 철강기업인 세베르스탈 주가가 제재 후 급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가 회복된다면 복구될 수 있다. 이는 모르다쇼프가 적극적으로 서방의 제재를 헤쳐나가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WSJ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제재 이전에도 모르다쇼프는 '지분 쪼개기'에 능했다. 앞서 그는 아들 니키타와 키릴에 넘긴 광산 회사의 지분을 지난해말 다시 회수했다. 측근에 따르면 "경영 승계를 위해 지분을 넘겼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에서다. 기업 오너가 승계를 위해 자녀에게 넘긴 지분을 다시 회수하는 일은 흔치 않다.
두 달 후 전쟁이 나고 서방의 제재를 감지한 모르다쇼프는 아들에게 회수한 지분을 다시 쪼개기로 결정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상당의 지분을 이번엔 셋째 부인 마리나 모르다쇼바에 넘겼다. EU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기 직전인 지난 2월 28일의 일이다. FT에 따르면 마리나 모르다쇼바가 관리하는 이 법인은 조세 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돼 있었다.
또 다른 올리가르히와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그의 142m 호화요트도 안전하게 러시아로 보낼 수 있었다. 이 배도 대표적인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등록돼 있었다.
앞서 그는 철강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여행과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또 사업 지역을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으로 넓히는 중이다. 서방이 주도하는 EU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다.
FT는 많은 올리가르히가 불투명한 소유권 구조와 관할권이 다른 불완전한 법률을 이용해 제재를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자금 전문가인 마이라 마르티니는 "(서방이 가하는 제재는) 회피할 수 있는 구멍이 많다"고 말했다.
영국서 배운 자본주의, '재산 은닉'에 활용
영국은 EU 중에서 올리가르히 제재에 앞장서고 있지만, 허점도 많다고 BBC는 지난 16일 보도했다. BBC 분석에 따르면 12명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와 관련된 부동산 자산 등은 약 8억 파운드(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가 소유권을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피하고 있다. 해외 조세회피처에 등록된 기업 명의로 부동산을 사들일 경우 진짜 주인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BBC는 덧붙였다.
OCCRP는 한 금융 전문가를 인용해 "우스마노프가 거래하는 현금 흐름을 찾기 어렵다"며 "그의 사업과 연관이 없어 보이는 회사들의 수에 어리둥절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12개 이상의 보고서가 있다"고 밝혔다.
TI의 레이첼 데이비스는 "(사유재산에 관한) 영국의 비밀 유지 시스템과 해외와 얽힌 소유권 관계 등을 통하면 영국에서 재산과 자금을 숨기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