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버스] 구조 1년 ‘절반의 희망’ 찾은 화천 사육곰, 철창 벗어날 그날은 언제

중앙일보

입력 2022.04.23 06:00

수정 2022.04.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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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반달가슴곰 13마리가 살고 있다.
자연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토종 반달가슴곰이라면 엄청난 화제가 됐겠지만, '사육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떨어진 채 좁은 철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사육곰 농장에서 미남이(L6-1)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행동풍부화를 위해 설치한 해먹에 올라가 놀고 있다. 김성룡 기자

칠성이(L7-1)가 곰보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준 먹이를 먹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만 사는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지난해 용인 곰 탈출 사건은 사육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육곰의 비극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1980년대 웅담 채취와 번식 후 재수출 등을 통한 농가 수익 증대를 위해 일본, 말레이시아 등으로부터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다. 

칠롱이(L7-2)가 정형행동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하지만 동물 보호 여론이 형성되면서 1985년 사육곰 수입은 금지됐고,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야생동물의 국제간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한 1993년 이후로는 수출 판로마저 막혔다. 정부는 1999년 농가 손실 보전을 위해 24년 이상 곰의 웅담 채취를 합법화했고, 2005년에는 다시 기준을 10년으로 낮췄다. 2014년에는 당시 남은 사육곰 967마리의 번식을 막기 위해 정부가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이 곰들은 웅담을 찾는 이들이 줄면서 애물로 전락했고, 개 사료와 잔반을 먹으며 사육장에 방치되고 있다. 현재(2021년 12월 기준) 전국 24개 농장에서 360마리의 사육곰이 철창 안에서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U3이 창살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 곰이 사육장 창살 밖으로 앞발을 내밀고 있다. 김성룡 기자

봄바(L1)가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육곰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곰보금자리프로젝트다. 이들은 사육곰이 철창을 벗어나 조금 더 곰에게 친화적인 환경의 생츄어리에서 남은 생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생츄어리란 갈 곳 없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시설로 관람이 목적인 동물원과는 다르다. 야생동물에겐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공간이자, 사람들에겐 야생동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교육하는 곳이다. 수의사와 환경운동가들이 모인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사육곰을 위한 국내 최초 곰 생츄어리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10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사육곰 농장에서 곰들에게 줄 먹이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청소를 마친 사육장에 과일 등 먹이를 놓아 두었다. 김성룡 기자

곰들이 알아보지는 못 하겠지만 활동가들은 청소를 마친 사육장 바닥에 사람 얼굴 모양으로 먹이를 놓아 두었다. 김성룡 기자

지난해 5월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 건강마저 악화된 화천의 한 농장주가 15마리의 사육곰을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1년 동안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은 이들이 이주할 생츄어리 부지 확보에 나서는 한편, 매주 일요일 농장을 찾아 사육장 청소와 영양식 제공, 건강 상태 확인과 약 처방, 이동을 위한 케이지훈련과 채혈을 위한 무뎌지기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안타깝게도 2마리의 곰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이들은 이름도 없는 곰들을 구분하기 위해 왼쪽부터 사육장 순서대로 위쪽은 U1, U2, U3... 아래쪽은 L1, L2, L3... 으로 이름 지었다. 그리고 SNS 공모를 통해 곰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현재까지 유원이(U1), 유식이(U6), 우투리(U8), 봄바(L1), 칠성이(L7-1), 미남이(L6-1), 미소(L6-2), 칠롱이(L7-2)가 이름을 얻었다. U2, U3, L3, L4, L5가 이름이 없으며, 현재 L5의 이름을 공모 중이다. 

사육장 물청소를 하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 김성룡 기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사육장 내실에 있던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에서 모여 화천 농장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단호박과 사과 고구마 등을 저울로 달아가며 13개의 통에 나눠 담았다. 수의사인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평소 고령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의심되는 유식이에게 소염진통제와 위장보호제를 숨긴 사과를 먹였다. 처음에 잘 받아먹던 유식이(U6)는 씹을수록 쓴맛이 나는 사과를 연신 뱉어냈다. 청소 조는 우리에 있던 곰들을 땅콩으로 유인해 옆 우리로 옮긴 뒤 내실에 있던 오래된 짚을 거둬내고, 똥 오줌으로 범벅이 된 우리를 깨끗하게 물청소했다. 청소를 마친 뒤에는 통에 나눠 담은 각종 과일과 채소 등을 바닥에 깔아줬다. 다시 깨끗해진 우리로 돌아온 곰들은 일주일에 한 번 먹는 특식을 즐겼다. 

고령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의심되는 유식이(U6)에게 줄 소염진통제와 위장보호제를 사과 속에 숨겼다. 김성룡 기자

유원이(U1)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행동풍부화를 위해 우물 주위에 놓은 먹이를 먹고 있다. 사진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동물권행동 카라 고현선 활동가는 지난 1년 동안의 화천 사육곰 돌봄 활동의 성과에 대해 "사육장 내 해먹을 달아주는 등 행동풍부화를 통해 사육곰들의 정형행동(주로 갇혀 사는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는 이상행동)이 많이 줄었다. 처음엔 먹이를 주면 누가 뺏어 먹을까 허겁지겁 먹었는데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사람들을 보면서도 경계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는 거로 알아 다가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츄어리 생활을 위해선 앞으로 합사훈련과 콜링훈련(신호에 따라 다시 우리로 돌아오게 하는 훈련)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사육곰 농장에서 봄바(L1)가 사육장 바닦에 앉아 있다. 김성룡 기자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 애니멀스 아시아 곰 생츄어리 전경. 사진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화천 사육곰들은 계획대로였다면 올 6월 생츄어리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부지 매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사실상 포기를 한 상태다. 최 대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부지 몇 곳을 알아보는 중인데 지금 당장 계약이 된다고 해도 시설 준비와 주민 설명회 등 과정을 거치는데 최소 몇 개월 이상이 걸린다. 겨울철은 이동이 어려워 빨라도 내년 봄이나 돼야 이주가 가능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화천 사육곰 농장 한 켠에 매장된 편안이 무덤에 산괴불주머니 꽃이 피었다. 아래쪽 2번째 우리에 있어 L2로 불렸던 이 곰은 죽은 뒤에야 편안이 라는 이름을 얻었다. 김성룡 기자

비석에 '편안이 여기에 편안히 잠들다'라고 써 있다. 김성룡 기자

화천 사육곰 철창 한쪽에 돌무더기가 있다. 이름도 없이 L2(아래쪽 사육장, 왼쪽 둘째라는 뜻)였다가 돌봄 직후인 지난해 6월 숨을 거둔 사육곰의 무덤이다. 부디 이제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활동가들은 '편안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편안이 여기에 편안히 잠들다'라고 적힌 비석 위로 노란 산괴나물주머니 꽃이 피었다. 내년 이 꽃이 다시 필 때쯤엔 13마리 사육곰들이 생츄어리에 입주해 너른 방사장을 뛰노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