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에 출마하려는 강용석 소장의 국민의힘 복당 신청이 불허된 지난 7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소장 강용석)에서 진행한 장장 11시간 6분짜리 특집 생방송은 뉴미디어 채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666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생방송은 30초 안팎의 짧은 영상 콘텐트가 범람하는 시대 흐름을 역행하고도 총조회 수 143만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일으켰다. 방송 10시간 만에 스스로 "17억원을 돌파했다"고 선언할 만큼 수익 면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이날 방송은 이미 현실 세계 이상으로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낸 가상 세계의 영향력이 일반의 생각보다 훨씬 커졌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자, 다른 한편으론 극단적 성향의 정치 팬덤이 현실 정치로 틈입해 기존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놀라운 현상이었다. 11시간 넘는 생방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을까.
비극을 경쟁하는 사회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비극 경연은 물론 이렇지 않았다. 비극은 당대 정치 체제나 왕권에 대한 서사, 또는 이에 충돌하는 개인의 욕망과 고통을 공연의 형태로 다뤘다. 반면 지금 우리 사회의 비극 경연은 고통의 수위가 얼마나 세고 자극적인지가 주된 관심사인 '불행 포르노' 릴레이에 가깝다.
왜 이런 콘텐트를 만들까. 여기엔 돈이 있다. 유튜버들이 뜬눈으로 밤을 새면 이들의 팬덤은 응원의 의미로 슈퍼챗(유튜브)이나 별풍선(아프리카TV)으로 불리는 도네이션(금전적 후원)을 경쟁적으로 쏜다. 처음엔 게임과 같은 유희거리에서 이런 돈 후원이 이뤄졌지만 이젠 실제 벌어진 사회적 비극을 나열하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거짓이거나 혹은 차별적 가치를 담고 있어도 내가 원하는 자극이기만 하면 아낌없이 돈(사이버 머니)을 지불한다. 노잠방·노방종 유튜버들의 비극 경연 시대에 가세연의 666분 콘텐트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분침 666번 돌 때 쏟아진 돈
명분은 선거 후원이었지만 한 정치인이 경기도지사 직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로서 지지를 호소하는 장이 아니라, 기존 가세연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던 이른바 '사이다' 의혹 제기라는 익숙한 콘텐트의 궤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강 후보가 겪는 고통을 전시하며 감정이입을 호소했고, 후원금 모금은 위기 극복의 서사가 됐다. 처음엔 간략히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정도였지만 방송 시작 3시간 46분 13초 되는 시점, 그러니까 팬덤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시점에 강 후보는 10만원 이상의 고액 후원은 환불이 어렵다고 고지했다(※10만원까지는 연말 정산 환급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오로지 모금을 위해 고통과 고난을 전시하는 노방종·노잠방과 근본적으로 같은 행태다.
이러니 이날 강 후보 선거용 후원 계좌 모금 행사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물론 후원금 모금 행위 자체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하지만 팬덤을 내세워 11시간 넘게 경쟁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행위가 본래 정치후원금이 갖는 목적과 상통하는지에 대해선 자못 의문스럽다.
다시 돌아가, 고대 비극 경연은 당대의 화두나 집단적 욕망을 가장 잘 담아내는 도구로 기능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했다. 반면 666번 분침이 돌아가는 동안엔 이런 본연의 비극 경연과 달리 노방종·노잠방이 제공하는 고통 포르노적 성질과 자본의 과실 추구라는 목적 안에만 머물렀다. 해당 채널 후원 광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복당을 놓고 강 소장과 갈등하는 '적대 세력'에 대한 콘텐트가 시간을 채우는 순간, 후원의 목적이 진짜 정치인지, 아니면 혹시 돈 그 자체인지 질문하게 된다.
'고통 포르노'의 확성기 된 정치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거대한 고통과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내가 그것에서 궁극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질 때 느끼는 감정이 숭고라 했다. 즉, 숭고는 극한의 고통에 이르러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내 삶을 침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순간에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