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모 찬스인지
정:정직한 실력인지
입:입력만 하면
시:시원하게 밝혀 줘요!
서울의대(82학번)를 나와 30대 초반에 제약사 임원으로 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났다. 처음엔 그렇게 오래 머무르려던 게 아니었는데 결국 조지타운 대학병원에 적을 두고 계속 미국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한국 대학 입학 제도가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 보내려고 다들 그렇게 하듯이 공부하라고 아이를 들볶으면 애의 삶의 질은 물론 부모와 자식 사이마저 나빠질 게 분명했다. 다른 부모처럼 일일이 스펙을 챙겨 줄 자신도 없었다. 미국이라고 학교 성적이나 스펙이 대입에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보다는 공정하게 평가하리라는 믿음이 있어 미국 잔류를 결정했다.
공부를 잘했던 큰 애는 다행히 많은 한국인이 선망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 후 정말 원하는 일을 찾기까지 긴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서너 해 뒤, 서울대학병원에 자리가 나 14년 만에 귀국하는 나를 따라 한국에 왔다. 학원에 다니며 의전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애라는 걸 알기에 지켜만 봤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첫해에는 서울대, 그리고 다음 해에는 연세대와 가톨릭대 의전원에 모두 불합격했다. 대학 졸업 후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 할 때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도 있었고, 나름 좋은 학부 출신이라 솔직히 실망이 컸다. 그래도 받아들였다. 애도, 또 나도 한국에서 의대(또는 의전원) 가는 게 얼마나 넘기 힘든 벽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주위 동료 의사들 애들은 척척 의대에 들어갔다.
존스홉킨스 스펙도 못 넘은 의대 문턱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두 명이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에서 부원장과 원장을 하던 시절에 각각 한시적으로 허용한 편입(딸)과 갑자기 도입된 대구 · 경북 지역 출신 우대 특별전형(아들)을 통해 경북의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정 후보자는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에서 입학 취소 결정이 내려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처럼 문서 위조나 거짓 스펙 기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론이 나쁘다. 장삼이사 눈에는 둘의 구분이 안 된다. 보통 사람 눈높이에선 둘 다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만약 직접 부탁한 게 아니라면 면접관이 알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평교수인 나야 말하지 않으면 남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병원장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지방 도시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병원과 대학이 두 개의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서울대학교병원-서울의대와는 달리 여전히 자웅동체를 유지하는 ‘국립’ 경북대학교병원-경북의대에서라면 굳이 병원장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아니 알게 된다.
물론 아버지가 고위 보직자로 근무하는 대학병원에 자녀가 지원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더군다나 자녀가 입학하면 학비를 감면해 주니 굳이 다른 대학에 지원하라고 등을 떠밀 수도 없다.
정 후보자 '이해충돌' 피했어야
이런 인식에 다다르면 조민씨 한 사람의 입학취소로 이 사회의 무너진 공정이 다시 온전히 회복되리라는 생각 자체가 참 순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어 새 내각 장관 후보자 자녀의 의대 편입 과정에서 불거진 구설을 보니 더 그렇다. 결국 제도 전체를 손봐야 하겠지만 그 전이라도 우선 빠르게 바꾸거나, 혹은 이런 비리를 걸러낼 수 있는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고위공직자는 물론이요 의대, 아니 모든 대학교수 자녀의 입시 전반을 전수조사(全數調査)하는 게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긴급조치가 아닐까 싶다. 정 후보자 이외에도 최근 전남대 총장 딸이 아빠가 의대 부학장이던 시절 전남대 의대로 편입한 과정이 또 다른 비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이미 2007년에 복지부 전 차관의 딸이 연대 의대 편입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요컨대 비리나 부정은 아닐지 몰라도 부모 찬스로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결국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겠다는 탐욕이 한국 사회에 편만하다는 증거다. 전수조사로 이러한 치부를 남김없이 드러내야 우리 사회가 진정한 공정에 도달할 수 있다.
AI 전수조사로 비리 걸러내야
이미 보험이나 신용카드 업계에서는 사기 가능성이 높은 사례나 거래를 찾아내거나 예측하는 데 다양한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지 오래다. 세금 신고 관련 부정을 찾아낼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채용 비리를 찾아내는 데까지 확대됐다. 무엇보다 사람이 수동으로 하는 거보다 예측률이 훨씬 높다. 알고리즘으로 찾아낸 사례를 심사자가 심층 조사하면 되니 효율성은 떼놓은 당상이다.
자기가 억울하게 떨어졌다고 의심하는 수많은 불합격자가 모두 AI의 알고리즘 학습을 위한 자료 제공에 나설 테니 자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이런 알고리즘을 개발한다고 하면 자원할 젊은이가 여럿일 게다. 청년을 위한 고용 창출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AI 알고리즘을 탑재할 앱(어플)과 웹사이트의 이름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바로 ‘부정입시!’, 즉 부(부모 찬스인지), 정(정직한 실력인지), 입(입력만 하면), 시(시원하게 밝혀 줘요!)다. 입시 비리를 찾아내는 AI 이름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전수조사 실시 초기에는 삐걱거릴 수도 있다. 알고리즘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정작 입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운 좋게 빠져나가고 억울한 사례가 생기기도 할 거다. 그러나 후자는 심사자의 세밀한 사후 조사로 보완이 가능하고,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알고리즘은 더욱 정교해질 거다.
미룰 수 없는 전수조사
의전원 입시에 연달아 떨어진 큰 애는 좌절했지만 금방 다시 일어섰다. 방관으로 일관한 나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기 전공을 살려 굴지의 바이오 회사에 다니며 승진도 했다. 원칙을 지키도록 도와준 큰 애가 고맙다.
[강태영 강동현의 별별시각]해외논문 쓴 고등학생 70% , 대학 가서 논문 한 편도 안써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공부하는 두 연구자가 지난 20년 간 국내 213개 고등학교 소속으로 작성된 해외 논문을 전수 조사한 연구 결과를 지난 18일 발표했습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이미 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수 해외 학술지에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학생의 70%는 대학 재학 이후 논문을 더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지한 탐구 활동이 아닌 이른바 '부모 찬스'가 의심되는 대입용 스펙이었던 겁니다. 요약 내용을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