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방황 끝에 프로 첫 우승을 차지한 이상일(31·팀 명인공조)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상일은 지난 14일 수원 빅볼 볼링경기장에서 열린 2022시즌 프로볼링 개막전인 DSD삼호컵 프로볼링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문경호(미스틱)를 213-199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프로 3년 차인 이상일은 데뷔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장식했다. 우승 상금은 2500만원.
이상일은 5번째 대회 출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프로볼링협회에 따르면 프로 선수가 첫 우승을 하기까진 평균 3~4년이 걸린다. 대회 참가로 따지면 평균 40~50개 대회를 치른 후에야 첫 우승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상일을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볼링계는 이상일의 우승을 두고 '초고속'이라고 부른다. 우승 후 만난 이상일은 "대회 내내 긴장을 많이 해서 얼떨떨하다. 상위권에 올라보자는 생각 뿐이었는데, 운이 많은 따른 것 같다. 볼링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충청도 청주 한 볼링장에서 직원(코치)으로 근무했다. 매일 2~3시간씩 퇴근 후엔 같은 장소에서 훈련했다. 그러나 정부 방역 지침에 따른 영업 시간·인원 제한 등으로 매출이 크게 줄자, 고통 분담 차원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삭감했다. 버티고 버티던 이상일은 결국 지난해 10월 볼링장 근무를 관뒀다. 그는 "볼링을 생업으로 삼기 어렵게 됐다고 판단했다.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직업이 필요했다. 볼링은 부업으로 삼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상일은 한 통신업체에 취직했다. 통신 케이블·배선 등을 설치·매설하는 일이었다. 업무는 고됐다. 전봇대에 오르고, 맨홀 안으로도 내려가기도 했다. 현장 근무 위주라서 퇴근 후엔 몸이 녹초가 됐다. 볼링장에서 근무할 때처럼 매일 2~3시간씩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없었다. 이상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볼링을 포기할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고민 끝에 공은 놓지 않았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서다. 아무리 피곤해도 일주일에 2~3번 2시간씩은 꼭 훈련했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이상일은 "우승하면서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부업이었던 볼링을 다시 주업으로 삼을까 고민 중이다. 더 잘 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참 동안 볼링공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2018년, 지인과 우연히 볼링장에 가게 됐는데, 볼링에 재미를 느꼈다. 곧바로 동호회까지 가입했다. 이상일은 "억지로 할 땐 몰랐던 볼링의 매력을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7년 방황 끝에 다시 공을 잡은 그는 거침없었다. 세 살 어린 남동생 이상민(28·핑거하우스)과 밤낮 가리지 않고 훈련해 1년 만에 나란히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이상민은 중부대 볼링부 출신이다. 이상일은 "부모님이 우승 소식에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 그동안 속 많이 썩였는데, 볼링으로 효도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상일은 "우승해보니 또 하고 싶다. 아직 몸상태가 70% 정도다. 100%가 됐을 땐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올 시즌 또 우승하는 게 목표다. 또 우리 형제가 결승에서 맞붙는 꿈도 꾼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