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의 75% 정도는 신장(kidney) 이식 대기자다. 보통은 신장을 소변이나 만드는 하찮은 장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장은 혈액을 깨끗하게 걸러주는 필터 기능을 수행하는 무척 중요한 장기다. 정수기가 물에서 이물질이나 역한 냄새를 걸러내듯, 신장은 혈액에서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배출하는 여과 기능을 수행한다. 신장에 손상을 입어 이와 같은 혈액 여과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만성 신장병이라 부르는데, 이들이 2021년 기준 3만 명쯤 되는 신장 이식 대기자의 정체다.
친인척 장기이식을 제외하면, 뇌사자 장기기증 외엔 다른 이식 경로가 적다. 그 탓에 2020년 기준, 신장 이식을 받으려면 꼬박 4년 9개월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니 기다리다 죽는 사람도 나오고,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라도 ‘기증’ 형식을 빌려 불법 장기매매를 시도하는 이들도 꾸준히 적발되는 식이다. 이런 비극을 막고자 뇌사자 장기기증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은 이것도 미봉책일 뿐이다. 신장 이식 대기자가 다른 장기이식 대기자와 비교하여 유독 많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환자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너무 낯설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은 ‘뭔가 수치가 높다’라는 추상적 건강 위험일 뿐이라, 매일 약을 챙겨 먹을 이유도 적다. 별일 있겠냐는 낙관으로 치료 적기를 놓쳐 이식 대기자가 된 이들은 기약 없이 뇌사자를 기다리다 죽는다. 이것이 장기 부족이나 뇌사자 기증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민 보건교육이 부재해서 생긴 문제인가. 우리는 오래 유예됐던 죽음을 이제야 맞는 중이다. 노령화가 심화하기 전에 대책이 나오길 빈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