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0분간 만나 덕담과 조언 오가
5년여 단절…서로 존중하는 문화 돼야
이게 단절된 게 문재인 대통령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수감 중이었다곤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의 주역인 이 전 대통령을 올림픽 개막식에 초대하고도 일반 출입구로 입장토록 해 ‘홀대’ 논란을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50분간 회동한 건 어떤 의미에선 ‘일상으로의 복귀’ 과정일 수 있다. 윤 당선인이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박 전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미안함 이런 것을 말씀드렸다”고 했던데 인간적 정리(情理)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본다.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이었던 2016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 박 전 대통령의 중형을 끌어낸 악연을 감안하면 말이다.
윤 당선인이 “당선되고 나니까 걱정돼서 잠이 잘 안 오더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가 무겁고 크다. 정말 사명감이 무섭다. 당선인 시절부터 격무이니 건강을 잘 챙기라”고 조언했다. DJ가 말한 전직 대통령들의 국정 경험과 지혜가 이런 것일 것이다.
윤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했던 좋은 정책이나 업적을 계승도 하고 널리 홍보도 해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감사하다”고 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전 정권과의 무조건적 단절은 분열을 낳을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배울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 당선인까지 13명뿐이다. 이들만 알고 고민하는 경지가 있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외면한다면 가장 중요한 조언자를 잃는 셈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오명 속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레이건부터 클린턴까지 현직 대통령에게 실용적 조언을 하는 ‘현인’으로 자리매김한 사례도 있지 않나.
그러기 위해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존중해야 한다. 자신도 5년 후엔 전직 대통령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전직 대통령들도 더는 주역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파적 지도자가 아닌, 중립적 국가 원로가 돼야 한다. 이번 회동이 그 출발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