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고딩엄빠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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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고딩엄빠'는 고등학생인 엄마 아빠의 육아 현실을 보여주는 종합편성채널 MBN의 관찰 예능이다. 10대의 임신을 사회문제로 다룰 때 흔히 보이던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는 없다. 어린 엄마들은 교복을 입고 스튜디오에 나와 아이를 낳게 된 사연, 가족사 등을 털어놓는다. 만삭의 아내를 살뜰히 살피는 어린 아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연 많은 어린 엄마, 양가의 지지를 받는 청소년 부부 등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지만 통계상으론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산모가 첫 아이를 낳는 중위 연령은 32.3세(2020년 기준)다. OECD 국가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3년엔 26.2세로, 관련 통계가 있던 14개국 중 중간(8위)이었으나 2009년부터 고연령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혼외 출산 비율도 극단적인 꼴찌다. 2020년 혼외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6876명(2.5%)인데, 해당 통계가 처음 나온 1981년의 9844명(1.1%)에 비해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참고로 OECD 평균 혼외출생률은 41%다. 
 
 즉, 결혼은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질 나이에 하고 아이는 갖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는 게 한국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다. 보편적인 '혼인'의 틀 밖에서 아이를 낳으면 곱지 않게 보는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10대가 엄마 혹은 아빠가 된다는 건 ‘문제아’로 낙인 찍히기 쉬운 무모한 도전이다. 방송 게시판에는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어린 엄마와 아빠들을 응원하는 목소리와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오른다. 자칫하면 방송 출연이 이들에게 또 다른 낙인찍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청소년 부모 양육 및 자립 지원 강화 방안'에 따르면 청소년 산모는 본인과 아이 의료비를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산모도 의료비 바우처 100만원을 지원받으므로 그보다 20% 더 얹어준 정도다. 임대주택 지원 대상도 245세대에 그쳐 모수(만24세 미만, 전국 8000여 가구)에 비해 미미하다. 모든 게 준비된 완벽한 부모만 아이를 낳고 기르라는 법은 없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어린 부모를 좀 더 따뜻하게 돌봐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