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보자는 그 배경에 대해 1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헌법에는 총리의 임명 제청권이 있는데, 인수위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으니 헌법 정신을 살리는 방식으로 인사를 하면 좋겠다고 윤 당선인이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청’은 인수위 규정에 없으니 ‘추천’이라는 방식으로 하고, 그것을 구두보다는 서면으로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인수위 측은 “책임총리제 실현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총리제는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공약으로 처음 등장한 정치적 개념이다. 대통령의 권한 중 일부를 총리에게 넘긴다는 게 핵심이다. 다만 명확한 운용 방식이 정해져 있는 법적 개념은 아니다. 학계에서도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시각부터 “이원정부제(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혼합)에 가까운 형태”라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이 때문에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 후 어떤 형태의 책임총리제를 실천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얼마만큼 보장할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다. 헌법에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행정 각부 통할권, 총리령 발령권 등 크게 7가지로 총리의 권한이 규정돼 있다. 그동안 대통령제 권력구조와 충돌하는 측면이 커 실제론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한 후보자의 설명은 ‘제청’보다는 ‘협의’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전날 한 후보자는 장관 인선에 대해 “최종적으로 다 윤 당선인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8명의 면면을 보면 윤 당선인의 ‘40년 지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 윤 당선인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직 인수위 단계이기 때문에 장관 인선 등 당선인 본인의 의사가 제일 많이 반영되고 있는데, 취임 후에 실제로 총리 의사가 얼마나 반영될지 봐야 할 것”이라며 “사실 책임총리제는 제도로 강제할 수 없고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로 권한을 내려놓는 운용의 묘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책임총리제 성패도 헌법 권한 그 자체보다 ‘운용의 묘’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책임총리제가 구현된 사례로 평가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노 전 대통령은 이해찬 전 총리와 협의를 통해 인사를 했다. 이 전 총리는 “국무위원 절반 정도는 내가 추천했고, 절반 정도는 노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의향을 물어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인원을 650명까지 늘려줬는데, 당시 청와대 비서실 정책보좌 인력보다 100여명 많은 숫자였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