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은 위법”
제주지법 행정1부(수석부장판사 김정숙)는 5일 중국 루디(綠地)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소송’에서 원고(녹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제주도가 2018년 12월 녹지 측에 개설을 허가하며 내건 ‘내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관광객만 진료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위법하다고 본 판결이다. 의료법 제15조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인의 진료거부를 금지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월 별도 소송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녹지국제병원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계 안팎에선 투자개방형병원과 관련한 논란도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주도 “개설조건은 특별법상 지사 재량권”
반면 녹지 측은 제주지사가 제주특별법에 따른 외국인진료기관의 개설 허가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진료 대상까지 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녹지 측이 2015년 6월 정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은 후인 2017년 8월 제주도에 개설 허가를 신청하자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부 허가를 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녹지 측이 법에 정해진 개원 시한인 2019년 3월 4일이 지나도록 개원을 하지 않자 의료법 64조에 따라 병원 개설 허가 취소절차에 착수했다. 의료법 64조에 따르면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병원을 열어야 한다.
당시 녹지 측은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으로 인해 개원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병원을 개원하기는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풀어주면 영리병원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녹지 “수백억대 손배 소송, 국제 소송도 고려”
제주도는 또 병원 건물과 부지가 국내 법인인 디아나서울에 매각된 점도 개원 허가 취소 사유로 꼽고 있다. 건물·부지 매각에 따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른 외국인 투자 비율(100분의 50 이상) 요건을 총족하지 못하게 돼서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판결문을 검토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오는 12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행정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지 측은 이와 관련해 “병원 개설 지연에 따른 700억 원이 넘는 피해액 회수를 위한 손해배상 소송과 국제소송(ISD) 제기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진 없이 건물만…“민심 어긋난 판결”
녹지 측은 2017년 8월 제주도에 개설 허가를 신청할 당시 134명의 직원을 신고했다. 4개 진료과목의 의사와 간호사 28명, 간호조무사 10명, 국제코디네이터 18명 등이다.
녹지병원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영리병원으로도 불리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투자자 자본으로 운용해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의료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건강보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고 의료비 폭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는 “이번 판결은 사실상 영리병원의 빗장을 연 민심과 어긋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