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떠오르는 권력이었던 문재인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권 교체기 인사를 반대했다. 그런데 자기는 퇴임을 앞두고 알박기 인사를 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반발하고 있다. 선거 이후 통합의 에너지를 만들어 전진해야 할 공동체가 분열하고 있다.
문재인·이재명 정권 이양 협조를
김영삼·김대중 협력 최선의 모델
지방선거 앞둔 대결 유혹 이기고
패자가 승자 도울 때 통합 이룰 것
김영삼·김대중 협력 최선의 모델
지방선거 앞둔 대결 유혹 이기고
패자가 승자 도울 때 통합 이룰 것
이재명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토론도 더 잘했고, 능력도 더 인정받았다. 상대는 탄핵으로 폐가(廢家)가 된 정당이 외부에서 영입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정치 신인이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를 진 결정적인 원인은 문재인 정부 5년의 실정(失政)이었다. 잘하려고 했겠지만 조국을 옹호한 내로남불, 미친 집값과 과도한 부동산 세금에 과반(過半)의 민심이 등을 돌렸다. 이재명은 잘 싸웠지만 정권교체라는 중력(重力)을 못 이겨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받은 문 대통령은 모든 걸 내려놓고 정권 이양에 협조해야 한다.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이 선택한 윤 당선인과 대립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아닌 진영의 사령관으로 남으려는 것인가.
민주당의 행태도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으면 먼저 반성하고 쇄신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송영길 대표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약속했던 ‘586 용퇴론’은 어디로 갔는가. 명분도, 염치도 없는 행동에 같은 당 의원들까지 집단 반발하고 있다.
선거 때 원내대표였던 윤호중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것도 쇄신을 거부하는 자세다. 이제는 이재명 후보의 조기 정치 복귀설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한 사람을 위한 무대에 세 사람이 올라가는 셈이다. 6월 지방선거가 대선 연장전으로 치러지면 정치적 내전이 일상이 될 것이다.
김대중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바로 그날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라이벌 김대중이 없는 자신만의 무대에서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이라는 강력한 개혁으로 집권 초반에 83%의 고공 지지율을 누렸다. 김대중을 찍었던 호남도 압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했다.
김대중이 1995년 정계에 복귀해 네 번째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김영삼은 그를 겨냥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 유보를 결정했다. 결정적인 장애물을 제거해 준 것이다. 1997년 12월 18일 대선에서 김대중이 이회창에게 승리하자 두 사람은 이틀 뒤부터 매주 만나 오찬 회동을 했다. 첫 회동 사흘 뒤인 12월 23일 양측 동수(同數)의 ‘12인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현직 경제부총리, 외무부 장관, 통상산업부 장관, 대통령 경제수석, 총리 행정조정실장,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 측 멤버였다. 인수위보다도 먼저 만들어져 사실상의 경제 비상내각 역할을 했다. 이 기구를 통해 김대중 당선인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 국가부도를 막을 수 있었다.
김대중 당선인의 인수위와 김영삼 정부의 재정경제원은 추경(追更) 예산도 공동으로 추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인에게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협조했던 것이다. 최선의 정권 이양 모델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에 패배한 직후인 3월 10일 윤석열 당선인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진짜 꼭 성공한 대통령이 돼 달라”고 했다. 윤 당선인이 “민주당이 과반 의석인데 이 후보님이 도와줘야지…”라고 하자 “내가 모든 힘을 다해서 돕겠다. 우리가 경쟁한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 후보가 “선거 때 마음을 거슬리게 한 거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윤 당선인은 “그거야 내가 더했지요”라고 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훈훈한 대화였다. 172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정치 초보 당선인의 성공적인 출발을 도와주면 국민은 발 뻗고 잘 것이다.
지금은 5년간 국정을 책임질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를 준비하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문 대통령은 객석으로 내려와야 한다. 민주당도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몰고가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대결의 정치를 끝내면 국민이 높이 평가할 것이다. 승자도 아량을 보이고 통합과 협치에 나설 수 있다. 이제는 윤 당선인이 국민과 함께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춤출 차례다. 거대 야당으로서 비판과 견제는 당연하지만 천천히, 두고두고 하면 된다. 먼저 승자만의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