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은 1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은 제재를 위반해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해왔다.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핵물질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패널은 매해 두 차례 보고서를 발간하며,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8월에서 올해 1월 사이 수집한 대북 제재 이행 관련 정보 등을 담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지난달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한 뒤에야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파기라며 강하게 규탄했지만, 북한은 수년 동안 미사일 능력 진전을 위한 노력을 멈춘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 신분 활용, 적극 조달
보고서는 오용호가 2016~2020년 아라미드 섬유, 회전 노즐, 베어링 등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부품을 ‘직물 기계’ 등으로 위장해 북한으로 반입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3월에는 러시아로부터 액체연료 추진 탄도미사일에 쓰이는 스테인리스 합금 9t을 사들였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약 한 달 전이다.
영변-평산-강선서 활동 포착
또 다른 우라늄 농축 의심 시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강선에서도 대형 트럭이 주기적으로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보고서는 이런 움직임의 목적은 분명치 않다고 했다.
극초음속, MaRV 기술서 성과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에서 “북한이 극초음속 활공체(Hypersonic Glide Vehicle), 기동형 탄두 재진입체(Maneuverable Reentry Vehicle)와 액체연료 탄도미사일 추진체를 결합한 신기술 이행에서 성과를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 1월 5일과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 단‧중거리 미사일에서 액체 및 고체 연료 추진방식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신형 고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해상 배치 목적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로 운용하려는 시도에도 주목했다.
유조선 직접 사들이는 北
이와 관련, 과거처럼 제3국 선박이 북한 항구에 직접 입항해 원유나 유류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은 중단됐다. 보고서는 “이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보인다. 대신 북한 국적 유조선만 원유를 직접 항구로 실어 나르는 방법상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북한 영해 인근까지는 외국 선박이 원유를 싣고 오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북한 선박이 이를 넘겨 받아 입항하는 방식이다.
북한의 유조선 및 화물 선박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에 선박을 이전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안보리 결의상 금지돼 있다. 이에 북한은 제3국의 브로커를 끼고, 유령 회사나 허위 정보를 활용하는 등 복잡한 절차로 선박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선박 ‘디지털 신분세탁’해 운항
예를 들어 북한 선박에 유류 제품을 환적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 콩크’호의 경우 2018년 6월 벨리즈 국적 ‘F 론라인’호 등 다른 선박의 해상이동업무 식별번호(MMSI)를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MMSI는 말 그대로 해상에서 선박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 번호인데, 다른 배인 것처럼 위장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전문가 패널이 지난해 선박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뉴 콩크’호와 ‘F 론라인’호라고 알려진 배는 같은 선박으로 추정된다. 배의 일부만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다시 페인트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뉴 콩크’호는 이미 제재 위반 의심 선박으로 추적 대상에 올라 있는데, 이런 식으로 배의 신분을 세탁하면 다른 배처럼 속여 위반 행위를 계속할 수 있는 셈이다.
아직은 엄격한 방역 조치 때문에 북한이 이런 방법을 통해 불법으로 반출‧입하는 물류의 양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잦아들면, 남‧북‧미 간 대화 국면에서 이미 느슨해진 제재망의 허점을 노려 이처럼 정교해진 수법을 제재 회피에 적극 활용할 우려가 크다.
“사치품 풀자” 왜 나왔나 했더니…
전문가 패널은 또 코로나19 봉쇄로 수입 자체가 막히며 북한으로의 사치품 유입에 대한 보고는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자장비나 화장품 등의 가격도 급등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 내 부유층조차 사치품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사치품으로 인식되는 생필품’의 수입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고급 양주와 양복 등을 예로 들며 “평양 상류층 배급용, 상류층의 생필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