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민사2부는 호텔신라가 김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매매대금 청구소송에서 김 회장 손을 들어준 항소심 결과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면세점 지분, 서로 “안 갖겠다”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였던 김 회장은 지난 2013년 롯데관광개발의 용산역 개발사업이 실패로 돌아가 유동성 위기를 맞자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600억원에 호텔신라에 팔았다. 이때 호텔신라는 3년이 지나면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조건으로 달고, 만약 김 회장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나머지 지분 30.2%를 호텔신라에 추가로 귀속하도록 했다.
하지만 3년 뒤인 2016년, 면세시장은 과도한 경쟁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고 호텔신라는 김 회장에게 지분을 되사가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며 대신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넘기겠다고 했다. 호텔신라는 이를 거부해 2017년 4월 소송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1심은 호텔신라, 2심은 김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다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다시 한번 서울고법의 판결을 지켜봐야 하지만 호텔신라로선 김 회장에 빌려준 600억원에 이자와 가산금까지 약 800억원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최종 판결에 따라) 현금 800억원이 들어온다면 현금 흐름상 큰 도움이 된다”며 “무엇보다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소송 이슈에서 벗어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잘 나가던 면세시장 ‘추락’
하지만 이후 시장 포화로 인한 출혈경쟁, 사업자들의 경쟁력 저하, 정부 규제, 중국발 사드 사태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며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여행·면세사업을 강타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24조8586억원이었던 국내 면세점 업계 매출은 지난해 17조8333억원으로 급감했다. 코로나로 중국 보따리상인 ‘다이공(代工)’의 발길이 끊어지자, 루이비통·샤넬·롤렉스 등 인기 명품 브랜드들은 줄줄이 국내 시내면세점을 떠나고 있다. 앞서 한화갤러리아와 두산이 면세사업을 접었고 신세계면세점조차 지난해 여름 강남점을 닫았다.
43년 역사 면세점을 어쩌나
롯데관광개발 역시 최근 면세점이 아닌 카지노와 제주드림타워 복합리조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제주드림타워는 롯데관광개발이 본사를 서울에서 제주로 옮길 만큼 사활을 걸고 있는 사업이다. 지난 2020년 12월 개장한 제주드림타워는 코로나 여파로 줄곧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4분기 호텔 수요가 살아나며 흑자 전환했고 12월엔 매출 115억원으로 첫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했다.
롯데관광개발은 그동안 제주 드림타워에 들어갈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2016년 43.55%인 김 회장의 롯데관광개발 지분율은 2020년 기준으로 28.54%로 낮아진 상태다. 김 회장으로선 지분을 더 처분하면 기업 지배력이 떨어질 수 있다.
동화면세점 자체도 2013년 당시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이른바 ’명품 3대장‘이 모두 입점해 있었지만 지금은 3대 명품은 고사하고 웬만한 인기 브랜드들이 빠져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화면세점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데, 누적 적자만 850억원에 달한다.
면세 시장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만 빠른 회복에 대해선 신중한 의견이 많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를 면제하면서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회복돼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2분기부터 면세점 수요가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면세업계 관계자는 “시내면세점은 결국 중국인 관광객들이 와 줘야 한다”며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외치며 준비 중인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는 하반기나 돼야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