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방영된 걸스플래닛 999는 단 한 번도 시청률 1%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유튜브의 관련 영상 누적 조회 수는 4억4000만 회를 넘겼다.
올 1월 3일 신곡을 내고 데뷔한 케플러는 멜론 같은 국내 음원 서비스 시장에선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의 유튜브 주간 인기 아티스트 순위도 데뷔 주는 73위, 그다음 주는 4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첫 1주일간 20만6000여 장의 앨범을 팔면서 신인 걸그룹 기록을 깼다. 신인 걸그룹이 첫 주에 20만 장을 판 것은 역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의 인기와 해당 그룹의 ‘성공’이 꼭 일치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오디션 선발은 팬덤의 결집력을 강력하게 만들었다. 직접 조립하는 가구 ‘이케아’가 최고 품질이 아니더라도 만족도가 높은 이유와 마찬가지다.
가볍게 무료 음악을 듣는 사람만으론 K팝 그룹이 생존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앨범을 구매해 소속사에 수익을 올려주는 팬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앨범을 사는 팬의 국적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글로벌 팬덤의 위력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2020)를 통해 데뷔한 엔하이픈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CJ ENM과 하이브가 공동 제작한 ‘아이랜드’도 시청률은 평균 0.75%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데뷔한 엔하이픈이 지난해 10월 낸 첫 정규 앨범 ‘디멘션: 딜레마’는 첫 주에만 81만8000장이 판매됐다. 2월 말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엔하이픈의 유튜브 음악 관련 조회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미국, 태국 순이었다. 한국은 10위에 그쳤다.
한일문화교류기금 펠로로 방한해 한국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모리 마유미 전 일본 아사히신문 싱가포르 특파원은 “K팝은 음악과 퍼포먼스 수준이 높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군무를 잘 추는 가수가 적기 때문에 K팝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