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공법 바꾸고 세금 포탈"…경찰 밝혀낸 광주붕괴 참상

중앙일보

입력 2022.03.28 15:00

수정 2022.03.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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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붕괴 아파트 수사 결과 발표  

28일 광주경찰청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수사본부 김광남 수사부장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시공사와 하도급업체, 감리업체의 복합적 과실이 드러난 공식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광주경찰청 붕괴사고 수사본부는 28일 ▶시공사·하도급업체·감리업체 등의 붕괴사고 과실 ▶불법 재하도급 및 인허가 비리 등을 골자로 한 ‘광주광역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이날 “하도급업체 등은 공사 지연 등을 우려해 안전성 검토를 받지 않은 채 공법을 임의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또 “감리는 개당 수십t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 설치 공사를 묵인했고 타설 층 아래 동바리 설치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공사 중이던 아파트 39층부터 23층까지 16개 층이 무너져 6명이 사망한 사건의 붕괴원인과 업체선정 과정 등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 “시공사·하도급·감리 복합적 과실”

지난 1월 11일 붕괴사고가 일어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38층 이하 지지대(동바리) 조기철거 ▶39층 아래 PIT층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 7개(개당 40~50t 추정) 하중 등을 주요 붕괴원인으로 꼽아왔다. 이 과정에서 안전성 검토가 이뤄졌는지 밝히기 위한 수사 등이 이뤄졌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이 붕괴 아파트 사고현장에 내린 ‘인사’도 붕괴 원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붕괴사고 현장 2개 단지 공사장에 총 6명의 콘크리트 품질관리원을 배치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자는 1명만 배치됐던 것으로 파악했다.
 

품질관리원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품질 관리가 소홀히 이뤄졌던 점이 붕괴 원인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6명 몫 품질관리 업무에 1명 배치

지난 2월 9일 광주경찰청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이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건물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도 콘크리트 강도부족이 건축물 안전성 저하로 이어졌다는 결과를 내놨었다. 조사 결과 붕괴 아파트에서 채취한 17개 층 콘크리트 시험체 중 15개가 설계기준 강도의 85% 수준에 미달했다.
 
경찰은 향후 수사에서 현대산업개발 본사 및 최종 인사권자인 대표이사까지 부적절한 인사배치를 했는지 따져볼 방침이다. 품질관리원은 경찰에서 ‘6명이 할 일을 1명이 하다 보니 업무가 벅찼다’고 진술했다.
 

경찰, 현산 인사도 수사선상

지난 2월 12일 희생자들의 영정 없이 차려진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진 사실도 확인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하도급업체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재하도급 업체 사장에게 일괄 지급한 뒤 다시 지급한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하도급업체 등은 불법 재하도급을 부인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와 산재보험 처리도 은밀하게 재하도급 업체 사장이 부담하는 형태로 이뤄졌다”고 했다.
 
경찰은 불법 재하도급뿐만 아니라 아파트 부지 매입 과정에서 부동산 시행업체 대표가 23필지 상당의 아파트 부지 매입 후 이전등기를 생략해 양도세를 포탈한 사실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국토부, ‘현산 등록말소’ 등 요청

지난 2월 4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은 현재까지 붕괴사고에 책임이 있는 현대산업개발과 하도급업체, 감리업체 등 붕괴사고 관련 책임자 1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입건해 10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중 현대산업 관계자 3명, 하도급업체 2명, 감리업체 1명 등 6명이 구속됐다.
 
현대산업개발 등은 이번 사고 여파로 최대 등록말소 처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현대산업개발 관할관청인 서울시와 하도급업체 관할관청인 광주 서구청에 각각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 감리업체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을 요청했다.
 
서울시가 국토부의 요청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의 건설업 면허를 등록 말소할 경우 앞으로 5년간 건설업을 할 수 없고 5년 뒤에야 면허 재등록을 할 수 있다.